원종도(袁宗道: 1560~1600)388), 원굉도(袁宏道: 1568~1610)389), 원중도(袁中道: 1575~1630)390) 삼 형제는 공안(公安 : 湖北公安) 사람이다. 따라서 세상에서는 이들을 "공안파(公安派)"라 칭하였다.

원씨(袁氏) 형제는 이지·탕현조와 깊이 교제를 하고 있었다. 이지·탕현조의 미학사상은 원씨 형제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이지(李贄)는 문학은 "동심(童心)"을 표현하여야한다고 인정하였고, 탕현조(湯顯祖)는 문학은 "정(情)"을 표현하여야한다고 인정하였으며, 원씨 형제는 문학은 "성령(性靈)"을 표현하여야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원굉도는 원중도(袁中道)의 시집 서(序)를 쓰면서 :

동생은 어려서 시를 익혔으며, …대부분이 모두가 성령(性靈)을 독특하게 서발하여, 격투(格套)에 구애되지 않았고, 자기의 흉중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면 따르지 않았으며, 붓을 대려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정(情)이 경(境)을 깨달으면, 경각에 천 가지 말을 하였으니, 마치 물이 동으로 흘러드는 것 같아, 사람의 혼을 빼놓았다. 그 중에는 훌륭한 곳도 있고, 잘못된 곳도 있다. 훌륭한 곳은 스스로 말할 것이 없으나, 잘못된 곳도 역시 본색을 특별하게 만든 곳이 많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 잘못된 곳을 좋아하니, 훌륭한 곳은, 어쩔 수 없이 답습하고 분식한 것을 한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고, 근대 문인들은 습기(習氣)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라하고 있다.
(弟小修詩, …大都獨抒性靈, 不拘格套, 非從自己胸臆流出, 不肯下筆. 有時 情與境會, 頃刻千言, 如水東注, 令人奪魂. 其間有佳處, 亦有疵處. 佳處自不必言, 卽疵處亦多本色獨造語. 然余則極喜其疵處, 而所謂佳者, 尙不能不以扮飾踏襲爲恨, 以爲未能脫盡近代文人氣習故也.)(《袁中郞全集》卷3 《敍小修詩》)

소위 "성령(性靈)"이라 하는 것은, 개인의 진실한 정감과 욕망(喜怒哀樂 嗜好情欲)을 가리킨다. 이 같은 정감 욕망은, 모든 개인이 자기 혼자 가진 것이며, 모든 개인의 본색(本色)이다. 이 점에서 이야기하면, 원씨 형제가 이야기한 "성령(性靈)"은 이지가 말한 "동심(童心)"이나, 탕현조가 말한 "정(情)"과 함의가 서로 통한다. 따라서 원씨 형제도 이지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진인(眞人)"·"진성(眞聲)"·"진문(眞文)"을 강조하였다. 예를 들면 원굉도(袁宏道)는 말하기를 :

나는 오늘날 시문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 중 만일 전해질 것이라면, 어쩌면 그것은 오늘날 여염부인이나 유자가 불렀던 《벽파옥(擘破玉)》·《타초간(打草竿)》 같은 류(類)다. 오히려 들은 것이 없고 지식이 없는 진인(眞人)이 지은 것이고, 진성(眞聲)이 많은 까닭이다. 한위를 흉내 내려고 찡그리지도 않았고, 성당을 배우려 들지도 않았으며, 성정에 맡겨 발하고 있으니, 오히려 사람의 희노애락 기호정욕에 통할 수 있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라하고 있다.
(吾謂今之詩文不傳矣! 其萬一傳者, 或今閭閻婦人孺子所唱 《擘破玉》, 《打草竿》之類. 猶是無聞無識眞人所作, 故多眞聲. 不效?于漢魏, 不學步于盛唐, 任性而發, 尙能通于人之喜怒哀樂嗜好情欲, 是可喜也.)(《袁中郞全集》卷3 《敍小修詩》)

소위 "진인(眞人)"이란, "견문이나 지식"의 속박을 받지 않으며, 따라서 "희노애락(喜怒哀樂) 기호정욕(嗜好情欲)"을 성품에 맡겨 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작품은, "진성(眞聲)"이며, "진문(眞文)"이라하고 있다. 이런 간법은, 이지(李贄)의 간법과 일치된 것이다.

그러나 원씨 형제가 말한 "성령(性靈)"은, 이지가 말했던 "동심(童心)"이나, 혹은 탕현조가 말했던 "정(情)"과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다. "성령(性靈)"에는 진실한 성정(性情)이라는 함의 외에도, 또한 "령(靈)"이란 다른 함의가 포함되고 있다. "령(靈)"이란, 탕현조가 말했던 "심령(心靈)"이며, 원씨 형제가 늘 말하던 "혜(慧)" 또는 "혜힐지기(慧?之氣)"(지혜롭고 영리한 기질)다. 작가에 대해 말하면, 이 같은 "혜힐지기"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재기(才氣)"다. 원씨 형제는, 이 같은 "혜힐지기"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문학은 "성령(性靈)"을 표현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개인이 자기의 진실한 성정을 표현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모든 개인의 천생의 영기(靈氣)·재기(才氣)를 표현하여야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성령설과 연계하여, 원씨 형제는 특별히 "취(趣)"라는 범주를 강조하였다.

원씨 형제는 탕현조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문학 작품에 대해서도, "취(趣)"는 빼놓을 수 없는 생명의 요소라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취(趣)"라는 것은 단지 뜻으로 깨달을 수 있어도 말로 전할 수 없으며, 이에 정의(定義)를 내리기란 아주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다. 원굉도(袁宏道)는 말하기를 :

세상 사람이 알기 어려운 것은 취(趣)다. 취는 산상지색, 수중지미, 화중지광, 여중지태와 같은 것이니, 말 잘하는 사람도 한마디로 할 수 없고, 마음으로 깨닫는 사람만 알 수 있다.」라하고 있다.
(世人所難得者唯趣. 趣如山上之色, 水中之味, 花中之光, 女中之態, 雖善說者不能下一語, 唯會心者知之.)(《袁中郞全集》 卷3 《敍陳正甫會心集》)

그러나 이렇게 말하긴 하였지만, 실제상으로는 그들은 "취(趣)"에 대해 일련의 설명을 하고 있다. 소위 "산상지색(山上之色), 수중지미(水中之味), 화중지광(花中之光), 여중지태(女中之態)"가, 곧 일종의 설명이 아니겠는가? 원중도(袁中道)의 다음 이야기도 "취(趣)"에 대한 모종의 설명이다:

모든 혜(慧)라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니, 지극하게 흘러가면 취(趣)가 생긴다. 천하의 취는, 어떤 것도 스스로 혜(慧)가 생기지 않는 것이 없다. 산의 영롱(玲瓏)하고 다태 함이나, 물의 련의(璉?)하고 다자 함이나, 꽃의 생동(生動)하고 다치 함은, 모두 천지간의 일종의 혜힐지기(慧?之氣)가 이루어 낸 것이기에, 따라서 사람들이 몇 배로 진완(珍玩)하는 것이 된다.」라 한 것이다.
(凡慧則流, 流極而趣生焉. 天下之趣, 未有不自慧生也. 山之玲瓏而多態, 水之漣?而多姿, 花之生動而多致, 此皆天地間一種慧?之氣所成, 故倍爲人所珍玩). (《珂雪齋集》卷1 《劉玄度集句詩序》)

이 설명에 따르면, 소위 "취(趣)"란 실은 한 사물이 사람에게 주는 미감이다. 산의 영롱(玲瓏)하고 다태(多態)함은, 산의 미다. 물이 연의(漣?)하고 다자(多姿)함은, 물의 미다. 꽃의 생동(生動)하고 다치(多致)함은, 꽃의 미다. 하나의 물건이 "취(趣)"가 있으면, 사람에게 많은 미감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취(趣)"는 심미취미이고, 미감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원씨 형제의 "취(趣)"의 본질에 대한 간법이다. 원중도는 "모든 혜(慧)는 유(流)하는 것이니, 유(流)하여 지극하면 취(趣)가 생긴다."라하고 있다. 이로부터, 그들이 볼 때, "취(趣)"는 "혜힐지기(慧?之氣)"의 유동(流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도 "취(趣)"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의 "취(趣)", 또한 "혜힐지기(慧?之氣)"의 유동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다른 말로하면, "성령(性靈)"의 서발(抒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굉도의 다음 이야기는 이 문제를 말한 것이다:

모든 취(趣)는 자연(自然)에서 얻는 것이 가장 깊고, 학문에서 얻는 것은 얕다. 어린아이라면 취(趣)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어떤 것이던 격지 않았다고 취(趣)를 등지는 것은 아니다. 얼굴은 단정한 용모가 없고, 눈은 정해진 눈동자가 없으며, 입은 재잘거리고, 발은 도약하면서 안정되지 않지만, 인생의 지극한 낙은, 진실로 이때를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맹자가 `갓난아이는 잃지 않는다.`라하였고, 노자가 `영아도 할 수 있다.` 라 한 것은, 모두 이를 가리키는 것이니, 취(趣)의 정등정각(正等正覺)의 최상승(最上乘)이다. …모든 사람은 나이가 점점 들면서, 벼슬이 높아지고, 물건이 점점 커지며, 몸에는 족쇄와 같은 것이 있게 되고, 마음에는 가시와 같은 것이 있어, 모공과 골절이 견문한 지식으로 속박되면, 리(理)에 들어가 날이 갈수록 깊어지더라도, 그것은 취(趣)를 떠나게 되고 날이 갈수록 멀어진다.」 라하였다.
(夫趣之得之自然者深, 得之學問者淺. 當其爲童子也不知有趣, 然無往而非趣也. 面無端容, 目無定睛, 口??而欲語, 足跳躍而不定, 人生之至樂, 眞無逾于此時者. 孟子所謂不失赤子, 老子所謂能?兒, 蓋指此也, 趣之正等正覺最上乘也. …?夫年漸長, 官漸高, 品漸大, 有身如桎, 有心如棘, 毛孔骨節俱爲見聞知識所縛, 入理愈深, 然其去趣愈遠矣.)(《袁中郞全集》卷3 《敍陳正甫會心集》)

동심(童心)의 표현, 적자지심(赤子之心)의 표현, 사람 천성(天性)의 표현이, 곧 "취(趣)의 가장 상승의 정등정각(正等正覺)"이다. 사람의 견문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성령(性靈)"은 더욱 심하게 속박 당하고, 이로 인해 "취(趣)"는 더욱 멀어진다는 것이다.

원씨 형제의 "취(趣)"의 본질에 대한 이와 같은 간법은, 사람들이 "취(趣)"가 있고, 예술가의 작품이 "취(趣)"가 있으려면, 필수적으로 자유롭게 제한 받지 않고 자기의 희로애락(喜怒哀樂)·기호욕정(嗜好情欲)·총명재지(聰明才智)를 서발(抒發)하여야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그들은 미(美)의 추구와 개성해방의 추구를 연계하고, 통일시켰다. 이 점에 있어 그들은 탕현조와 유사하다.

이론상으로 볼 때, 이지의 동심설(童心說)이나, 탕현조의 유정설(唯情說) 공안파의 성령설(性靈說)은 모두 하나의 공통적 약점이 있으니, 그것은 "동심(童心)"·"정(情)"·"성령(性靈)"과 사회생활 사회실천과의 관계를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 점이다. 그들은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나 기호욕정(嗜好情欲)·총명령혜(聰明靈慧)는 모두 "지연(自然)"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있는 천성(天性)이며, 이는 일종의 사회생활 사회실천을 떠난 인성(人性)·인정(人情)·개성(個性)이 포함된 경향이라 강조하고 있다. 비교를 하자면, 이 약점은 공안파에 있어 더욱 뚜렷하다. 이지가 말한 "동심(童心)"은, 중점을 두었던 것이 봉건예교·유가교조의 속박을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탕현조가 말한 "정(情)"은, 중점을 둔 것이 봉건사회의 "리(理)"와 "법(法)"의 속박을 벗어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것은 모두 현실을 향한 것이다. 그리나 공안파가 말한 "성령(性靈)"이나, 그들이 말했던 "취(趣)"는, 오히려 "업(業)에는 한 가지도 능한 것이 없고, 세상에서 한 가지 일도 감당 못하는, 가장 천하에 요긴하지 않은 사람"391)이나, 그 어떤 "구애나 속박을 받지 않고, 멋대로 나날을 보내는" "산림지인(山林之人)"392)을 미화하고, 동시에 그들 자신들이 추구해온 주육성기(酒肉聲伎)하고, "마음대로 행하면서, 기탄이 없는"393)생활방식에, 논증을 하기 위한 것이다. 성령설(性靈說)에는 현실을 이탈하려는 소극적 인소와 용속(庸俗)하고 저급한 취미가 포함되고 있다. 성령설의 이런 약점은, 뒷날 청대 원매(袁枚)의 신상에서 또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