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노자≫를 아무런 여과 없이 <페미니즘>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자 사상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여성성에 대한 강조>가 곧바로 <페미니즘>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공허한 이야기라는 것이었고, 만약 “실제로” 그러하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연구가 충분히 있은 후에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지요.

다른 한 가지는 <一>과 같은 예에서 보듯이 ≪노자≫에 나타나는 특정 개념을 이용하여 논의하는 것에 대한 것인데, 실제적으로 이런 논의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개념들이 페미니즘에서 이용할 만한 것들인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거(주석)를 중심으로 논의를 했던 것이지요. 요컨대 저의 표적은 선생님께서 비판하셨던 <노자와 페미니즘>과 같은 입장에 대한 비판이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道家를 전공하고 있다보니 “노자도 페미니스트이냐?” 혹은 “도가 사상에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많으냐?” 등등의 질문을 가끔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 글을 쓰신 분이나 많은 도가 전공자들 또한 그랬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노자와 페미니즘>이란 주제가 학계에서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나 중국의 경우는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으니 서구 학계에 비하면 아마도 10여 년은 훨씬 늦은 감이 있지요. 더구나 50년대의 니담의 주장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50여 년의 차이가 있지요. 80년대 이래 우리 동양학계에서 <노자>를 중심으로 나왔던 논의의 대다수는 反文明, 自然主義, 환경 문제가 주조를 이루었고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도 이런 조류 속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학계에서 <노자와 페미니즘>이란 주제가 부각된 것 자체가 서구 학계의 영향이 상당히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80년대 말에 대학에 다닐 때 이미 “서양에서는 도가 사상을 페미니즘에 연결시키는 사람들이 많다더라!” 아니면 “서양의 페미니스트들이 도가(특히 노자 중심)에 관심이 많고 심지어 이를 페미니즘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는 오늘에 이른 것이지요. 실제로 90년대 들어서서 우리 나라에서 그런 문제 의식에서 나온 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참 재미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는데, 서양 학자 가운데 이른바 도가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노자와 페미니즘>이란 주제를 긍정하거나 이를 관심 있게 논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한은 대개 그렇습니다(물론 이것은 단정할 것은 못되지만요... 다 보지는 못했으니까...) 그럼 왜 그런 현상이 나오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번역>이라는 장치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노자≫ 제6장에 “谷神不死, 是謂玄牝” 이란 구절이 있지요. 사실 이 구절은 노자와 페미니즘에서 가장 중시하는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玄牝>이란 말의 번역이 재미있습니다. 거의 모든 번역본이 여기의 牝을 <the female> 이라거나 아니면 <the feminity>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玄牝>이라고 읽을 때와는 그 느낌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즉 <玄>에 무게 중심을 두고 읽는 우리의 풍토와는 달리 <牝>에 무게 중심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리곤 이것이 바로 <道>에까지 연결이 되고, 부드러움-음-여성성 더 나아가 feminism 까지 나아가지요. 참으로 번역의 힘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물론 이런 해석은 전혀 틀린 것도 아니고 비판할 구석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개념이 연상시켜주는 주변 개념들의 지형도가 상당히 달라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지요. 더 나아가서 이를 통해 <道> 자체가 여성성의 원리로 파악이 되고, 赤子, 母, 柔와 같은 개념들이 잘 어우러져서 마치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어주는 듯한 <모성애>로 연상되기는 아주 쉬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최근에 나온 사라 알란의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를 보면 이러한 은유적 개념들은 대개 <물>와 <식물>의 뿌리 은유로써 설명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사라 알란 식의 해석이 본래의 맥락이나 개념에 훨씬 친화적입니다. 이렇게 보면, 노자가 과연 여성성의 원리를 가지고 남성성에 대한 것을 해체하려는 문제 의식이 있었느냐 하는 것은 아주 쉽게 답변이 될 수 있지요. 그런 것은 없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저의 생각입니다. 물이나 식물 은유는 여성성-남성성과는 무관한 맥락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오늘날 보기에 <여성성의 원리>로 보이는 듯한 개념들이 <노자>에는 그렇게 많이 출현하는 것이냐? 여성성-남성성이란 구도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그럼 도대체 무엇을 말하기 위해 그런 용어들을 구사한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비평이자 조언의 흐름이었지요.

저는 여기서 역사적인 곳으로 넘어가고 싶습니다. 先秦 시대 중국에서 이른바 오늘날 <철학>에 해당하는 학문 활동을 한 사람들은 대개 士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제자백가의 탄생 배경은 수많은 제후국의 몰락과 관계가 있습니다. 다양한 전통과 사상을 지닌 이들이 수 백 개의 나라가 망하면서 <亡國의 知識人>이 엄청나게 생겨났는데, 이들을 우리는 <떠돌이 지식인 遊士> 라고 하지요. 이들은 몇몇 살아남은 나라에 경쟁적으로 의탁을 하는데, 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학파가 생기고 사상이 형성된 것이지요. 이런 얘기들은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라 자세한 얘기는 피하지요.

그런데 군주들이 이들을 받아들이면서 얻고자 했던 것은 결국 <治天下之道>였지요. 그리고 이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을 도가니 유가니 등으로 분류하여 六家라고 부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근데 이 가운데 道家의 사상 또한 포함되는 것이고, 이들이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부드러움의 철학>이었지요. 이들은 이를 여성성-남성성의 도식으로 설명한 바가 없지요. 이를 구태여 적용하자면, 항우-유방, 秦-漢의 방식으로 설명하였지요. 秦이 왜 망했는가, 그것은 지나치게 폭압적이고 힘에 의존한 법가적인 통치를 했다, 이것은 물과도 같은 道의 참된 길에서 벗어난 것이다. 유방은 이와 달이 부드러웠고 물과 같았다. 그래서 천하를 통일한 후에는 淸靜無爲와 같이 부드러운 통치를 했다, 그래서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등등

마지막 질문에서 <一>을 남성성-여성성을 넘어선 것으로 읽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냐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거야 해석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닐까요? “老子는 이렇게 말했다.” 가 아니라 “여성주의 시각에서 본 노자”라면 얼마든지 성립이 가능한 것이지요. 다만 그것이 본래의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정당화될 수 있는 해석인가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지요. 즉 <一>을 陰陽 범주를 넘어선 통합자로 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를 바로 남성성-여성성으로 보는 것은 적어도 텍스트 자체의 맥락에서는 정당화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는 점만을 말하고 싶습니다. <抱一>도 마찬가지이지요. 그것은 생명력의 원천을 보존하라는 맥락이 본래적인 것이지 <男女를 뛰어넘어>란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노자≫보다는 다른 텍스트를 찾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