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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빙(羅聘) -

- 생몰년 : 1733~1799
- 국    가 : 중국


羅聘 1733~1799

중국 청(淸)나라(1616~1912)의 화가.

자(字)는 둔부(遯夫), 호(號)는 양봉(兩峰). 스스로 화지사승(花之寺僧)이라고 일컬었다.

안후이성(安徽省)에서 태어났으며,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에서 살았다.

양저우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분위기가 자유로운 고장이었으므로 옹정제[雍正帝, 1678~1735, 중국 청나라의 제5대 황제. 세종(世宗). 재위 1722~1735]에서 건륭제[乾隆帝, 1711~1799, 중국 청나라의 제6대 황제. 고종(高宗). 재위 1735~1796]에 이르는(1723~1795년) 동안에, 이른바 ‘양저우 팔괴(揚州八怪)’가 이 곳에 모여들었는데, 나빙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양저우 팔괴’란 청나라 중기 장쑤성 양저우에서 활동한 8명의 화가, 즉 고상(高翔, 1688~1754)⋅김농(68)⋅나빙⋅왕사신(汪士愼, 1686~1762)⋅이방응(411)⋅이선(425)⋅정섭(523)⋅황신(624)을 이른다. 이들 외에 고봉한(34)⋅민정(閔貞)⋅화암(619)을 포함하여 양저우파(揚州派)라고도 한다. 이들은 대운하(大運河)의 수리(水利)와 소금 거래에 기반을 둔 호상(豪商)들의 원조를 받으려고 모여든 화가들로, 독자적인 화풍(畵風)과 화역(畵域)을 가지면서 당시의 전형적인 문인화에서 벗어난 자유 분방한 그림을 그렸다. 시골에서 대도시로 올라와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고답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개성과 독창성을 중시, 당시로서는 기괴하게 여겨져 ‘괴(怪)’자가 붙여진 것이다.

[귀취도(鬼趣圖)]를 특기로 한 나빙은 김농의 수제자로, 스승이 죽은 뒤에 스승의 작품을 모아 1773년(건륭 38년)에 [제화기(題畫記)]와 시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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