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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루야마 오쿄(圓山應學) -

- 생몰년 : 1733~1795
- 국    가 : 일본


圓山應學 1733. 5. 1.~1795. 7. 17.

일본의 화가.

아명(兒名)은 이와지로(岩二郞).

단바구니[丹波國, 지금의 혼슈(本州) 기나이(畿內) 지방, 즉 나라(奈良)⋅오사카(大阪)⋅와카야마(和歌山) 일대]에서 태어났으며, 교토(京都)에서 죽었다.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 1603~1867년, 에도 시대)의 화가로 마루야마파(圓山派)의 창시자이다.

처음에는 교토에서 이시다 유테이(石田幽汀, 1721~1786, 일본의 화가)를 통하여 가노 단유(3)를 중심으로 하는 도쿠가와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가노파(狩野派, 중국적인 소재와 기법을 중시하는 일본의 회화 유파)의 화풍(畫風)을 배우는 등 여러 화풍을 폭넓게 흡수하였다. 그러나 가노파의 보수적인 화풍에 불만을 느껴 자연의 객관적 묘사를 제일의로 하는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로 눈을 돌렸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이 서양화와의 만남이었다.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과 명암법(明暗法, chiaroscuro, 대상의 형태를 관찰하여 빛의 현상에서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 관계 및 그 변화를 파악하여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방법. 음영법)을 주체로 하는 서양화법은 동양화에서는 볼 수 없는 박진감 있는 묘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당시의 시대 사조(思潮)였던 실증주의(實證主義, positivism)적 정신의 세례(洗禮)를 받은 그를 매혹시켰다.

중국 송(宋)나라(960~1270)⋅원(元)나라(1271~1368) 원체화(院體畫)의 전통적인 사실(寫實) 표현과 당시 일본을 여행 중이던 청(淸)나라(1616~1912)의 사생파(寫生派) 화가 심전(283)이 전한 중국 최신의 사생화풍을 익혀, 장식적 효과와 조화를 함께 갖춘 온건한 사생화의 새 양식을 창조함으로써 마루야마파를 형성, 교토 화단(畫壇)의 일대 세력을 이루었다.

[사조남좌도(四條南座圖)]는 투시도법(透視圖法)을 이용하여 먼 산이나 인물에 음영(陰影)을 드리워 대상의 입체감을 강하게 의식한 초기 작품이다.

[설송도(雪松圖)](1765년)도 전통적인 일본 회화의 주제에 서양적 시각을 도입하여 입체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특히 윤곽선을 중시하던 일본 회화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암두비안도(岩頭飛雁圖)](1767년)는 극히 사실적으로 안정된 구도에 장식적인 효과를 더하여 마루야마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1773년 이후의 화풍은 공간 표현에 큰 진전을 보여 1776년을 전후하여 절정기를 맞이하였는데, 병풍 [등도(藤圖)]⋅[우죽풍죽도(雨竹豊竹圖)]가 대표작이다.

1784년부터는 선(線) 본위의 평면적이고 간략한 대상 묘사로 나아갔으며, 산수(山水)나 화조(花鳥)보다는 유교적(儒敎的) 주제가 많아졌다. 이는 많은 병풍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 때까지의 양식을 건축 공간 속에 되살려 본 결과이기도 하였지만, 당시 세력을 떨치던 조정(朝廷)의 귀족들과 유학자(儒學者)들이 회화를 선호하는 계층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그 요구에 부응한 것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혁신적 양식과 기법을 창조한 그로서는 일종의 후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마루야마 화풍의 일본화(日本化)⋅토착화(土着化)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뒤 부업(副業)으로 메가네에(眼鏡繪, 거울을 이용하여 투시 원근법이 느껴지도록 하는 그림. 또는 볼록 렌즈를 이용한 장치를 통하여 보는 그림. V d’Optique)를 그리면서 남화(南畫)와 가노파의 필법(筆法)을 절충하고 원근법에 의하여 묘사된 풍경화를 넓은 화면 안에 그려 넣어 독특한 구성력으로 이들을 종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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