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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시룡(莫是龍) -

- 생몰년 : 1539?~1589?
- 국    가 : 중국


莫是龍 1539?~1589?

중국 명(明)나라(1368~1644) 말기의 화가이며 시인.

자(字)는 운경(雲卿)⋅정한(廷韓), 호(號)는 후붕(後朋)⋅추수(秋水).

학자로 알려진 명나라 중기의 관리(官吏) 막여충(莫如忠, 1508~1588)의 아들로, 장쑤성(江蘇省) 화팅[華亭, 지금의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시와 서화(書畫)에 능하여 10세에 문장을 지었으며, 14세에 군(郡)의 제생(諸生)에 보임(補任)되고 다시 공생(貢生)이 되었고, 정시(廷試)에서 1등을 하는 등 수재였다.

중년에 국학(國學)에 들어갔으나 한림원(翰林院) 대조(待詔) 벼슬을 사양하고 일생을 평민으로 청빈하게 보냈다.

시는 당(唐, 618~907)을, 문(文)은 전한(前漢, B.C.202~A.D.9)을 종(宗)으로 삼았으며, 글씨는 미불(187)⋅왕희지(王羲之, 307~365, 중국 동진의 서예가)⋅종요[鍾繇, 151~230,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정치가이며 서가(書家)]를 법으로 삼았다.

산수화(山水畫)를 잘 그렸는데 이른바 ‘원말 4대가(元末四大家)’의 한 사람인 황공망(620)을 배워 우아한 풍격이 있었다.

문인화가(文人畫家) 동기창(153)과 함께 주창(主唱)한 남북이종론(南北二宗論)은 나중에 상남폄북설(尙南貶北說)이 되어 남종화(南宗畫)의 우위(優位)를 결정짓는 근본이 되었다. 이것은 그림의 기술을 중시하는 북화(北畫)에 대하여 휘호자(揮毫者)의 정신과 교양을 중시하는 남화(南畫)의 우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동기창의 남북이종론을 부연한 화론서(畫論書) [화설(畫說)]이 있고, 이 밖에 지은 책으로 [막정한 유고(莫廷韓遺稿)]⋅[석수재집(石秀齋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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