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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우인(米友仁) -

- 생몰년 : 1086/1090?~1165/1170?
- 국    가 : 중국


米友仁 1086/1090?~1165/1170?

중국 북송(北宋, 960~1126)의 화가.

자(字)는 원휘(元暉)⋅윤인(尹仁), 소자(少字)는 호아(虎兒), 호(號)는 해악도인(海岳道人)⋅나졸노인(懶拙老人).

문인화가(文人畫家) 미불(187)의 아들로, 후베이성(湖北省) 샹양(襄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미불을 대미(大米)라고 하고 그를 소미(小米)라고 하였다. 아버지를 닮아 호방한 기풍의 문인적(文人的) 기질을 평생 잃지 않았다. 아버지를 이어 산수⋅화조(花鳥)의 화법(畫法)을 배웠고, 특히 그의 운산(雲山) 화법은 ‘미법 산수(米法山水)’로 정착되었다.

미점(米點, 미불과 미우인이 창안하였다고 전해지는 미법 산수의 한 기법)을 써서 변환 출몰(變換出沒)하는 안개와,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산이나 나무의 아련한 형태를 묘사하였는데, 대표작으로 [운산득의(雲山得意)]가 있다.

천성이 초일(超逸)하여 그림을 그릴 때 법도(法度)를 일삼지 않았다. 미불의 운산에 다시 새로운 법을 덧붙여 매우 간략하게 그렸는데, 스스로 묵희(墨戱)라고 이름지었다.

고종[高宗, 1107~1187, 중국 남송의 초대 황제. 헌황제(憲皇帝). 재위 1127~1162]의 총애를 받았고, 벼슬이 병부시랑(兵部侍郞)⋅부문각(敷文閣) 직학사(直學士)에 이르렀다.

송나라가 남도(南渡)한 뒤 고종의 서화 감식(鑑識)을 맡아 매일 밤 청한(淸閑)의 연회(宴會)에 나아가 봉사하였는데, 종종 고종의 뜻에 영합하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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