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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양(朴箕陽) -

- 생몰년 : 1856~1932
- 국    가 : 한국


朴箕陽 1856~1932

조선(朝鮮, 1392~1910)의 문신(文臣)이며 서화가(書畫家).

자(字)는 범오(範五), 호(號)는 석운(石雲)⋅쌍오거사(雙梧居士), 본관(本貫)은 반남(潘南).

1888년(고종 25년)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급제(及第), 설서(說書)⋅형조참판(刑曹參判) 등을 거쳐 경기도⋅함경도의 관찰사(觀察使)를 비롯하여 여러 벼슬을 두루 지내고 의정부(議政府) 찬정(贊政)이 되었다.

1899년(광무 3년) 궁내부(宮內府) 대신 서리(大臣署理)에 이어 규장각(奎章閣) 제학(提學)을 지내다가,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男爵) 작위를 받았다.

1921년 경학원(經學院) 부제학(副提學)을 지내고, 1925년 중추원(中樞院) 참의(參議)가 되었다.

거문고⋅바둑⋅서(書)⋅화(畫)에 능하였고, 행서(行書)와 묵죽(墨竹)에 뛰어났으며, 몇 차례 조선 미술 전람회(鮮展) 평의원(評議員)이 되었다.

작품으로 [금강산 건봉사 석가여래 영아탑 봉안비(金剛山乾鳳寺釋迦如來靈牙塔奉安碑)]의 글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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