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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관(范寬) -

- 생몰년 : ?~?
- 국    가 : 중국


范寬 ?~?

중국 북송(北宋, 960~1126)의 산수화가(山水畫家).

본명(本名)은 중정(中正), 자(字)는 중립(中立, 仲立).

산시성(陝西省) 화원[華原, 지금의 후이현(耀縣)]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이성(426)⋅형호(610)에게 화법(畫法)을 배웠으나, 그 뒤에 ‘사람에게 배우느니 차라리 사물에게 배우고, 사물에게 배우느니 차라리 마음에게 배우는 것이 낫겠다.(興其師於人者 未若師諸物 興其師於物者 未若師諸心)’고 생각하여 중난산(終南山)⋅타이화산(太華山)을 두루 유람, 산시⋅간쑤(甘肅) 지방의 웅장하고 빼어난 산세(山勢)를 그렸다.

자연으로부터 화법을 배우고 독창성을 중시하여 자연의 진경(眞景)을 묘사하는 일에 주안을 두어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화법은 옹건하고 힘차며 온후하면서도 강건한 기상이 흐른다. 웅장한 암산(岩山)을 화면에 크게 솟아오르게 하는 구도로 그 중량감(重量感)이나 견고한 실질(實質)을 그려 ‘산의 진골(眞骨)을 묘사한다.’고 평가되었다.

산의 모양은 정면으로 그린 것이 많은데, 깎아지를 듯 기세가 있어서 보는 이의 마음을 빼앗는다. 산꼭대기에는 늘 울창한 숲을 그려 넣었으며, 물가에는 큰 돌들이 우뚝 솟아 각진 것과 둥근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흥취를 돋우어 준다. 준법[皴法, 동양화에서 산애(山崖)나 암석의 굴곡 등의 주름을 그리는 화법. 산이나 흙더미 등의 입체감⋅양감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동양적 음영법(陰影法)]에서는 우점준(雨點皴)에 뛰어났으며, 단선준법(短線皴法)을 곁들이고 독창적인 필법을 사용하여 산의 중후하고 견고한 질감을 매우 잘 표현하였다.

묵을 쓰는 데에도 특별히 공을 들였는데, 선을 긋고 준법을 쓴 뒤 다시 묵으로 뒤덮는 농염(籠染) 기법을 사용하여 묵의 깊은 운치 속에 풍경의 소박하고 중후하며 다사로운 모습이 더욱 잘 드러난다. 설경 산수(雪景山水)에 뛰어나서 한여름에라도 그의 그림을 보면 한기(寒氣)를 느낄 정도이다.

거연(26)⋅동원(155)⋅이성 등 산수화가들과 함께 송나라 초에 중국 산수화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범관의 기법을 이어받아 가장 참신한 화풍(畫風)을 연 사람은 이당(400)이다. 동유(董逌)⋅미불(187)⋅조맹부(539) 등 역대의 화가들은 그를 극찬하였다.

북방계의 범관과 이성의 화풍은 대립하는 두 개의 형(型)으로서 송나라 산수화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은 4~5폭뿐이며, 그 중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설경한림도(雪景寒林圖)]가 대표작이다. [계산행려도]는 명(明)나라(1368~1644) 때의 표구공(表具工)에 의하여 사방 3cm 가량 잘려져서 전하여지기 때문에 지금의 화면은 약간 좁은 느낌이 있다. [설경한림도]는 원래 쯔진청(紫禁城)에 있었으나, 1860년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圓明園, 1725년 옹정제(雍正帝, 1678~1735, 중국 청나라의 제5대 황제. 세종(世宗). 재위 1722~1735) 때 착공된, 베이징(北京) 북서쪽 교외에 있던 이궁(離宮)]을 습격할 때 민간으로 유실(遺失)되었다가 1966년 초에 돌아와 허베이성(河北省) 톈진 박물관(天津博物館)에 보관되어 있다.

이 밖에 [사성수산도(四聖搜山圖)]⋅[설산소사도](타이베이 국립 구궁 박물관<臺北國立古宮博物館>)⋅[수묵부용도(水墨芙蓉圖)]와 길이 약 16.7m가 넘는 거대한 [장강만리도(長江萬里圖)]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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