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 ?~?
- 국 가
: 한국
李上左 ?~?
조선(朝鮮, 1392~1910)의 화가.
자(字)는 공우(公祐), 호(號)는 학포(學圃),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그의 가계(家系)에 대해서는 그와 이배련(李陪連)을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와 노비(奴婢) 출신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와 이배련이 같은 인물이라면 이숭효
(432)⋅이흥효
(479)도 그의 아들이 되며 이정
(458)은 그의 손자가 된다.
어숙권(魚叔權, ?~?, 조선의 학자)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따르면, 본래 어느 사대부가(士大夫家)의 가복(家僕)이었는데 어려서부터 그림 재주가 뛰어났고, 특히 산수(山水)와 인물에는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중종(中宗, 1488~1544, 조선의 제11대 왕. 재위 1506~1544)의 특명으로 종6품 아문(衙門)인 도화서(圖畫署) 화원(畫員)으로 보직(補職)을 받았다.
화풍(畫風)은 중국 남송(南宋, 1127~1279)의 마원
(162)⋅하규
(585)의 작풍(作風)을 이어받았으며, 강희안
(24)⋅안견
(292) 등과 더불어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1543년(중종 38년) 예조령(禮曹令)으로 신정(申珽)⋅유항(柳抗) 등이 번역한 유향(劉向, BC 79?~BC 8?, 중국 전한의 학자)의 [열녀전(烈女傳)]을 유이손
(375)이 사자(寫字)할 때 삽화를 맡아 그렸다.
인물화에 특히 뛰어나서 중종이 승하(昇遐)하자 1545년(인종 1년) 석경(石敬, ?~?, 조선의 화원)과 함께 중종 어진(御眞)을 추사(追寫)하였으며, 1546년(명종 1년)에는 공신(功臣)들의 초상화 [공신도형(功臣圖形)]을 제작하여 원종 공신(原從功臣)에 책록(冊祿)되었다.
그의 진품으로 확인되는 작품은 한 점도 없으며, 국내외에 남아 있는 작품은 모두 전칭작(傳稱作)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남송에서 명(明)나라(1368~1644) 절파(浙派, 중국 명나라 말기 때 발생한 회화의 한 파)로 이어지는 화풍과 유관함을 보이는, 인물 중심으로 구성된 산수화와 도석 인물화[道釋人物畫, 신선(神仙)이나 불교의 고승(高僧)⋅나한(羅漢) 등의 인물을 그린 그림. 道釋畫]이다.
그 중에서도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82.3×190.6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은 지금까지 전하는 조선 초기 작품 가운데 마원의 화풍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보여 준다. 보물로 지정된 [나한도(羅漢圖)]⋅[불화첩(佛畫帖)](개인 소장)이 유작(遺作)으로 전하고 있으나 진위 문제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