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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숭(李嵩) -

- 생몰년 : ?~?
- 국    가 : 중국


李嵩 ?~?

중국 남송(南宋, 1127~1279)의 화가.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 첸탕(錢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목공일을 하였으나, 나중에 화원(畫院) 대조(待詔) 이종훈(李從訓)에게 화재(畫才)를 인정받고 그의 양자(養子)가 되어 그림을 배웠다.

광종[光宗, 1147~1200, 중국 남송의 제3대 황제. 자황제(慈皇帝). 재위 1189~1194]⋅영종[寧宗, 1168~1224, 중국 남송의 제4대 황제. 공황제(恭皇帝). 재위 1194/1195~1224/1225]⋅이종[理宗, 1205~1264, 중국 남송의 제5대 황제. 안황제(安皇帝). 재위 1225~1264]의 3대(1190~1264년)에 걸쳐 화원 대조로 봉직하였다.

도석 인물화[道釋人物畫, 신선(神仙)이나 불교의 고승(高僧)⋅나한(羅漢) 등의 인물을 그린 그림, 道釋畫]⋅인물⋅산수(山水)⋅계화[界畫, 자(尺)를 사용하여 반듯하고 섬세하며 입체감 있게 그리는 중국 화법. 송나라 때 합리적인 사실주의의 요구에 따라 비롯되었다.] 등을 잘 그렸다.

80세 이상 살았으며, 오랫동안 궁정(宮廷)에서 일하였지만, 사상과 감정은 민중과 비교적 밀접하여 고대의 궁정 화가 중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인물이다.

[공작도(工作圖)]에는 수공업자가 제작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복전도(服田圖)]에는 농민이 농사짓는 일의 전 과정을 잘 묘사하였다. [관조도(觀潮圖)]에 보이는 바람에 흩어지는 연기는 너무도 참담하게 표현되어 남송이 곧 패망할 것이라는 예감을 느끼게 한다. [사미도(四迷圖)]는 귀족들의 극도로 타락한 도덕성과 부패상을 그대로 표현하였고, [춘사도(春社圖)]에는 농촌의 빈부(貧富)의 차가 현격하여 사람과 개가 먹이를 놓고 싸우는 처참한 광경을 그렸다. [화랑도(貨郞圖)]에는 농촌의 아낙네와 아이들이 생활의 곤란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데 힘겨워하는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일하지 않고도 배불리 먹고 마시는 부자들과 평생토록 일만 하면서도 춥고 배고픈 고통을 피할 수 없는 농민을 대비하여 참담한 현실을 묘사하였다.

위의 작품 중 [화랑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망실(亡失)되었다. 남아 있는 [화람도(花籃圖)]는 화려하고 대범하면서도 장식이 매우 강렬하며, 항저우 서쪽 시후호(西湖)를 그린 [시후호도(西湖圖)]는 짙은 운무(雲霧) 속에 싸인 풍광을 그린 것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명상에 잠기도록 만든다. 그 밖에도 정교하면서도 운치가 있는 작은 계화 몇 폭이 전해진다.

계화에는 송나라 때의 건축 예술이 장점이 반영되어 곽충서(42) 이후부터 원강(364) 이전까지의 700년 동안 보기 드문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송강(宋江) 등 36명의 영웅이 의거(義擧)를 일으키는 형상을 만들었는데, 이는 중국 고대 회화사(繪畫史)의 진귀한 작품이다. 송강은 중국의 구어체(口語體) 회장(回章) 소설 [수호지(水滸誌)]의 주인공으로 실제 인물이며, 1121년 화이난(淮南) 지방에서 농민 반란을 일으켜 35명의 부하를 이끌고 한때 상당한 기세를 올렸으나, 그 뒤 항복한 사실이 [송사(宋史)]에 기록되어 있다. 남송으로부터 원대(元代)에 걸쳐 이야깃거리로 흔히 채택되었다.

이 밖에 [적벽부(赤壁賦)]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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