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 1903~1975
- 국 가
: 한국
李承萬 1903~1975
한국의 삽화가.
호(號)는 행인(杏仁).
서울에서 태어났다.
휘문 고등 보통 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 지금의 휘문 중⋅고등 학교) 재학 중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37)에게 배웠고, 졸업한 뒤 서울 종로(鐘路) 기독교 청년회 에 있는 고려화회(高麗畫會) 회원인 구본웅
(47)⋅안석주
(297)⋅장발
(495) 등과 공부하였다.
그 뒤 일본 도쿄 가와바타 화학교(東京川端畫學校)에서 공부하였고, 조선 미술 전람회(鮮展) 서양화부에서 네 차례나 연속 특선하였다.
극단 ‘토월회(土月會)’에 가입하여, 무대 장치를 담당하다가, 1928년 [매일 신보(每日申報)] 기자로 신문 연재 소설 삽화를 그렸다.
1935년 박종화(朴鐘和, 1901~1981, 한국의 시인이며 소설가⋅비평가)의 소설 [금삼(錦衫)의 피] 삽화를 그린 이후 짝을 이루어 [임진왜란(壬辰倭亂)]([조선 일보], 1969~1975년) 등의 삽화를 그렸다.
만년(晩年)에는 삽화가 협회(揷畫家協會) 회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