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ㅇ>이>이우  

인쇄 하기  html이나 txt파일로 저장 합니다.  원하시는 곳에 붙여넣기 하세요.  글자 크기 크게 글자 크기 작게
- 이우(李俁) -

- 생몰년 : 1637~1693
- 국    가 : 한국


李俁 1637(인조 15)~1693(숙종 19)

조선(朝鮮, 1392~1910)의 왕족(王族)이며 서화가(書畫家).

자(字)는 석경(碩卿), 호(號)는 관란정(觀瀾亭), 시호(諡號)는 효민(孝敏),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종친(宗親)으로 낭선군(朗善君)에 봉해졌고, 1662년(현종 3년) 형제인 여러 왕자와 더불어 7조(朝)의 어필(御筆)을 모사(模寫)하여 강행한 공으로 숭헌대부(崇憲大夫)가 되었다.

이듬해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로 중국 청(淸)나라(1616~1912)에 가서 뇌물로 4천금(金)을 사통(私通)한 죄로 귀국한 뒤에 삭직(削職)당하였다가 나중에 용서되었다.

1664년 경기도 과천(果川) 등지의 여러 절을 찾아다니며 행패를 부렸다는 대간(臺諫)의 탄핵으로 투옥되었다가 곧 풀려 나왔다.

1671년(현종 12년) 문안사(問安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3년 뒤 인선 대비[仁宣大妃, 1618~1674, 효종(孝宗, 1619~1659, 조선의 제17대 왕. 재위 1649∼1659)의 비]가 돌아가자 수릉관(守陵官)을 지냈다.

1681년(숙종 7년) [선원록(璿源錄)]을 수찬(修撰)하였고, 1686년(숙종 13년) 사은사(謝恩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글씨는 모든 서체(書體)를 잘 썼으며, 많은 비액(碑額)을 썼다.

편저로 [대동금석첩(大東金石帖)]⋅[대동명필첩(大東名筆帖)]⋅[백년록(百年錄)]⋅[안평일적(安平逸迹)]⋅[임지설림(臨池說林)]⋅[정효공가승(靖孝公家乘)], 글씨에 [법주사 벽암대사비(碧巖大師碑)](충청 북도 보은)⋅[직지사 사적비(直指寺事蹟碑)](충청 북도 금산) 등이 있다.

상위  이전  다음


제작 : 동방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