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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태(李惟台) -

- 생몰년 : 1916~1999
- 국    가 : 한국


李惟台 1916. 4. 6.~1999. 4. 10.

한국의 동양화가.

호(號)는 현초(玄艸).

서울에서 태어났다.

20세 때 김은호(92)에게 배우고, 일본 도쿄 데이코쿠 미술 학교[東京帝國美術學校, 지금의 무사시노 미술 대학교(武藏野美術大學校)]에서 공부하였다.

1937년 [가두(街頭j)]로 제16회 조선 미술 전람회(鮮展)에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1940년 제19회부터 계속 입선, 1943년(제22회)까지 3차례의 특선과 최고상인 창덕궁상(昌德宮賞)을 두 차례 받았으며, 1944년 제23회 마지막 선전(鮮展)에서도 특선을 받았다.

1944년 서울 화신 화랑(和信畫廊)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으며, 광복된 뒤에는 이화 여자 대학교(梨花女子大學校) 교수를 지냈다.

1946년에는 김영기(82)⋅김중현(103)⋅배렴(208)⋅이응로(449)⋅장우성(499)⋅조중현(550) 등과 함께 단구 미술원(檀丘美術院)을 조직하여 일본 잔재의 청산과 전통적 한국화(韓國畫)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으며, 그 해 3월 첫 회원전을 개최하였다.

1955년 제4회 대한 민국 미술 전람회(國展)부터 추천 작가⋅초대 작가⋅운영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57년에는 김기창(67)을 비롯한 김은호의 제자들이 만든 후소회(後素會) 회원들과 대개 국전(國展)에서 소외당하였던 작가들과 백양회(白陽會)를 결성하였다.

1965년 서울 신문 회관(新門會館)⋅신세계 화랑(新世界畫廊), 1972년 현대 화랑(現代畫廊), 1983년 동산방 화랑(東山房畫廊)⋅문예 진흥원(文藝振興院) 등에서 개인전을 7차례 열었다.

예술원(藝術院) 회원이며, 이화 여자 대학교에서 32년 동안 후진을 양성하고 미술 대학 학장으로 1979년 정년 퇴임하였다.

초기에는 섬세한 필치의 인물화, 정형적 화조화(花鳥畫)를 많이 그렸고, 1960년대 이후에는 주로 사실적(寫實的)이고 화려한 색감의 산수화(山水畫)를 그렸는데, 정확한 관찰을 통하여 오묘한 자연의 표정을 찾아 내어 재창조한 자연을 그렸다.

세필(細筆)과 채색에 의하여 유현(幽玄)하고 격조 있는 화풍(畫風)을 이루었으며, 탈속적(脫俗的)인 분위기와 선경(仙境)의 정취를 자아내는 특성이 있다.

실경 산수화(實景山水畫, 고려 시대와 조선 초⋅중기에 자연 경관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로도 널리 알려졌다.

1974년 국민 훈장 동백장 등을 받았다.

작품으로 [산문설신(山門雪晨)]⋅[설경(雪景)]⋅[여인 3부작-감(感)](1943년, 169×215cm, 경기도 용인 호암 미술관)⋅[추경(秋景)]⋅[탐구]⋅[화운(和韻)]⋅[삭풍설지(朔風雪枝)](198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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