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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건(許楗) -

- 생몰년 : 1908~1987
- 국    가 : 한국


許楗 1908~1987

한국의 동양화가.

호(號)는 남농(南農).

허유(608)의 넷째 아들 허형[許瀅, 1861~1938, 미산(米山), 운림산방(雲林山房) 2대]의 2남 3녀 중의 맏아들로, 전라 남도 진도(珍島)에서 태어났다.

1925년 소년 미술 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았으며, 1927년 목포 상업 전수 학원(木浦商業專修學園)을 수료하였다.

1930년 제9회 조선 미술 전람회(鮮展)에 출품하여 입선함으로써 선전(鮮展) 출품을 본격화하였으며, 1943년까지 줄곧 입선하였다.

초기에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전통 산수(山水)⋅고사(高士) 인물⋅화조(花鳥)⋅영모(翎毛, 새와 짐승 등을 소재로 그린 그림)⋅풍속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으며, 1930년대 초 한때 이상범(421)의 화풍(畫風)을 모방하였다.

1942년쯤에는 일본에서 유학한 아우 허림(許林, 1917~1942)의 영향으로 필선(筆線) 위주의 묘법(描法)에서 벗어나 신선한 감각의 점묘화(點描畫)를 그렸다. 1944년(제23회) 선전 총독상을 받은 [목포일우(木浦一隅)]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한편 아우 허림은 1907년 창설된 문부성(文部省) 주최의 미술 전람회(文展)에 1941년과 1942년 연속으로 입선하였다. 조선인 화가로 일본 문전에 연속 입선한 사람은 허림과 김은호(92)뿐이었다. 그러나 허림은 스물여섯 나이로 요절(夭折)하여 자신의 그림 세계를 미처 꽃피우지 못하였다.

그 뒤 전통적인 필선 위주의 대상 묘사로 희귀하여 [금강산 만폭동(金剛山萬瀑洞)](1948년)⋅[서귀소견](1951년)과 같은 실경 산수화(實景山水畫, 고려 시대와 조선 초⋅중기에 자연 경관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와 [강상정취(江上情趣)]⋅[강정범영(江亭汎影)](1950년대, 50×20cm, 개인 소장)⋅[장간추색] 등의 관념 산수(觀念山水)를 남겼으며, 부분적으로 대상의 입체감을 표현하고 시점(視點)을 하나로 통일하는 등 화법(畫法)의 변화를 보였다.

1953년 대한 민국 미술 전람회(國展) 추천 작가, 1955년 초대 작가, 1960년에는 심사 위원으로 위촉되었고, 1975년 목포 난석회장(木浦蘭石會長)을 지냈다.

1976년 남농상(南農賞)을 제정하였으며, 같은 해 대한 민국 문예 예술상을 받았다.

1982년 은관(銀冠) 문화 훈장을 받았고, 1983년 예술원(藝術院) 원로 회원이 되었다.

할아버지 허유의 화풍은 아버지 허형에 이어 허건(운림산방 3대)과 허림, 허건의 맏아들 허경(許熲, 1933~, 남농 미술 문화 재단 이사장), 허림의 외아들 허문(許文, 1941~, 운림산방 4대), 허경의 아들 허진(許土眞, 1962~, 전남 대학교 미술 대학 교수, 운림산방 5대), 방계(傍系)인 허백련(607) 등으로 가전(家傳)되어, 조선 후기에서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남화(南畫) 역사의 산증인으로 호남(湖南) 지방의 서화 전통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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