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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드(Gerard David) -

- 생몰년 : 1460?~1523
- 국    가 : 네덜란드


Gerard David 1460?~1523. 8. 13.

플랑드르(Flandre)의 화가.

네덜란드 중부 위트레흐트(Utrecht)주 오우데바테르(Oudewater)에서 태어났으며, 벨기에 북서부 서(西)플랑드르주의 주도(州都) 브뤼헤[Brugge, 또는 브뤼주(Bruges)라고도 한다.]에서 죽었다.

네덜란드 서부 노르트홀란트(Noord Holland)주의 주도 하를렘(Haarlem)에서 자랐으며, 1484년 이후 브뤼헤에서 오우바테르(786)에게 배우면서 초기의 화풍(畫風)을 확립하였다.

1484년 브뤼헤 화가 조합(Guild of St. Luke in Brugge) 에 가입하였고, 1501년에 조합장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탄생(Nativity)](부다페스트 미술관)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Christ Nailde to the Cross)](1480년쯤, 런던 국립 미술관)와 같은 초기 작품에서 게르트겐(23)과 오우바테르로 대표되는 하를렘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뛰어난 채색가로서의 기량을 보였다.

브뤼헤에서는 구스(47)⋅바이덴(453)⋅에이크 형제(764, 765) 등의 작품들을 연구하였으며, 이 시기에 [옥좌(玉座)에 앉은 성모(聖母) 마리아와 천사](독일 다름슈타트)와 [세 폭으로 된 성모상(聖母像)(Madonna Triptych)](1495~1498년쯤, 파리 루브르 미술관) 등을 그렸다.

멤링(388)의 영향을 받았고, 1494년 멤링이 죽은 뒤에는 만기(晩期) 브뤼헤파(派)(Bruges School)의 중심적 존재로, 조화 있는 색채와 세밀한 사실(寫實) 표현에 의한 온화하고 이상적(理想的)인 시적(詩的) 정취의 계보를 이어받았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려지게 만든 제단(祭壇) 장식화로 [캄비세스의 심판(Judgment of Cambyses)](1498년, 두 폭의 패널)과 [그리스도의 세례(洗禮)(Baptism of Christ)](1502~1508년쯤, 3연작화, 브뤼헤 그뢰닝게 미술관), [성자(聖者)들과 봉헌자(奉獻者)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Virgin and Child with Saints and Donon)](1505년쯤, 런던 국립 미술관), [수태 고지(受胎告知, Ecce Ancilla Domini<Annunciation>)](1506년, 두 폭의 패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된 [천사와 성자들과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Madonna with Angels and Saints)](1509년, 루앙 미술관)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원숙한 작품으로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색채와 더불어 명암과 양감(量感), 공간을 처리하는 장인(匠人)다운 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패널화 [심판(審判, Judgment)]은 푸티(putti, 벌거벗거나 강보에 싸인 어린 아이의 화상)와 꽃 장식 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기법을 최초로 플랑드르파(派)(Flemish School) 그림에 도입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만년(晩年)에는 몇 년 동안 벨기에 북부 안트베르펜(Antwerpen)주의 주도 안트베르펜[영어로는 앤트워프(Antwerp), 프랑스어로는 앙베르(Anvers)]에서 신성한 주제를 좀더 친숙하고 인간적으로 그린 마사이스(347)의 작품을 보고 그 생명력과 생동감에 감명을 받았으며, 이 고장의 신흥 화파(畫派)의 경향을 반영한 작풍(作風)을 나타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Descent from the Cross)](1510~1515년쯤, 뉴욕 프릭 컬렉션)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Crucifixion)](1510~1515년쯤, 베를린 국립 프로이센 문화재 박물관)는 그러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극적인 생동감이 뛰어나게 표현되어 있다.

다비드의 절충적이고 신중한 고대 화풍에 관해서는 전문가에 따라 의견이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그가 상상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브뤼헤의 사라져 가는 예술을 재생시키고자 노력하면서 앞서간 거장(巨匠)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지만, 다비드야말로 네덜란드 화풍의 창시자들이 이룩한 업적을 바탕으로 자기 혁신을 모색한 진보적인 예술가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극적인 종교적 주제의 배경을 이루는 장중하고 잔잔한 풍경의 묘사는 자유롭고 넓이가 있는 공간 감각을 신선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최근에 재평가되고 있다.

이 밖의 작품으로 [성녀(聖女) 안나의 제단화(St. Anne Altapiece)](1500~1510년쯤, 워싱턴 국립 미술관)⋅[가나의 혼인 잔치(Marriage at Cana)](1503년쯤, 파리 루브르 미술관)⋅[네 천사와 성모자(聖母子)(Virgin and Child with Four Angels)](1505년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성녀 카타리나의 신비의 결혼(Mystic Marriage of St. Catherine)](1505~1510년, 런던 국립 미술관)⋅[하느님의 축복(God the Father Blessing)](1506년, 파리 루브르 미술관)⋅[시온 가멜회 수도원의 제단화](1509년)⋅[성모와 작별하는 그리스도(Christ Bidding Farewell to His Mother)](1510년쯤, 더블린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이집트로 피신하는 도중의 휴식(Rest on the Flight into Egypt)](1510년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봉헌자(奉獻者)의 가족과 함께 있는 성모자](파리 루브르 미술관)⋅[대천사장 미카엘의 제단(Altar of Archangel Michael)](빈 미술사 박물관)⋅[동방 박사들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악사(樂士) 천사들 사이에 있는 성모자(Virgin with Child between Angel Musicians)](바젤 미술관)⋅[죽은 그리스도를 끌어안은 성모(Virgin Embracing the Dead Christ)](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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