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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종원(武宗元) -

- 생몰년 : ?~1050
- 국    가 : 중국


武宗元 ?~1050

중국 북송(北宋, 960~1126)의 화가.

본명(本名)은 종도(宗道), 자(字)는 총지(總之).

허난성(河南省) 백파[白波, 지금의 멍진(孟津)]에서 태어났으며, 벼슬은 우부원외랑(虞部員外郞)에 이르렀다.

도교(道敎)와 불교의 인물화에 뛰어났으며, 오도현(318)을 존숭하였다.

17세기에 이미 이름을 날렸고, 진종(眞宗, 968~1022, 중국 북송의 제3대 황제. 재위 997~1022)이 도교를 신봉하여 경덕(景德) 말년(1007년)에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을 지었을 때 이 도교 사원의 벽화 제작을 지휘하였다. 또 뤄양(洛陽)⋅중악(中岳)⋅쉬창(許昌) 등지에서 종교 벽화를 제작하였는데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자기 그림을 중히 여겨서 ‘귀인(貴人)이나 높은 관리(官吏)가 날마다 문 앞에 와서 간곡히 부탁해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작품은 [조원선장도(朝元仙仗圖)]만이 남아 있는데, 이는 어느 도교 사원 벽화의 밑그림인 것 같다. 원(元)나라(1271~1368) 초 서화(書畫)의 천재 조맹부(539)는 이를 진품이라고 판정하였다.

그림의 내용은 봄을 주관하는 신(神) 동화(東華)와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남극성’을 달리 일컫는 말. 수명을 맡아 본다는 별)의 두 신이, 선관(仙官)⋅시종(侍從)⋅의장(儀仗) 행렬을 이끌고 태상현원황제[太上玄元皇帝, 노자(老子, ?~?, 중국의 철학자이며 도가(道家)의 창시자)]를 알현(謁見)하러 가는 것이고, 모두 88명이 그려져 있다.

유도순(劉道醇)은 무종원이 오도현을 배워 ‘고요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체득하였다.’고 하였으며, 소철(蘇轍, 1039~1112, 중국 북송의 정치가이며 문학가⋅시인)도 무종원의 작품이 ‘오도현의 그림을 방불케 한다.’고 하였다. 탕후(湯垕)는 ‘인물을 그림에 있어 운필(運筆)이 물 흐르는 듯하여 정신과 안색이 살아 움직인다. 시종과 마부의 뒤돌아보는 얼굴 모습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해서 옛 사람들이 매우 칭찬하였다.’고 하였다.

현재 미국에 있는 이 그림은 무종원과 북송 종교 인물화의 대표작이며 ‘화성(畫聖)’ 오도현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또한 이 그림은 당⋅송대 도교의 발전과 그 변화상을 연구하는 데 진귀한 형상(形象) 자료를 상당히 많이 제공하고 있다.

한편 쉬베이홍(263) 기념관에는 낙관(落款)이 없는 그림 한 폭이 있는데, 역시 송나라 때의 작품으로 시기가 조금 늦다. 대략 비교하여 보면 무종원의 그림은 오도현의 ‘활달하고 유유자적한 기세’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쉬베이홍 기념관에 있는 그림과 비교하면, 붓의 기세를 꺾음에 힘이 있으며 초탈적(超脫的)인 정취가 있다. 두 그림의 운필이나 조형⋅구도는 높은 예술 수준에 도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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