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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내현(朴崍賢) -

- 생몰년 : 1920~1976
- 국    가 : 한국


朴崍賢 1920. 4. 13.~1976. 1. 2.

한국의 여류 동양화가이며 판화가(版畫家).

호(號)는 우향(雨鄕).

평안 남도 진남포(鎭南浦)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에서 죽었다.

1940년 제19회부터 조선 미술 전람회(鮮展)에 출품, 최고상인 창덕궁상(昌德宮賞)을 받았다.

1944년 일본 도쿄 여자 미술 전문 학교(東京女子美術學校) 일본화과를 졸업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남편 김기창(67)과 12차례에 걸쳐 부부전(夫婦展)을 가졌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형식을 벗어난 조형 실험적인 작품과 추상적인 작품을 남편과 함께 제작하였으며, 판화와 오브제(objet) 작업도 하였다.

1956년 제8회 대한 미술 협회[大韓美術協會, 미협(美協)] 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같은 해 제5회 대한 민국 미술 전람회(國展)에 [노점(路店)](180×235cm)을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받아, 확고한 작가적 위치를 획득하였다.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Worldhouse Gallery, New York) 주최 한국 현대 작가 초대전에 초대 출품하였고, 서울 대학교 사범 대학 교수가 되었다.

1960년 대만(臺灣)과 홍콩(香港) 등지의 초대전에 출품하고, 이어 일본⋅베트남(越南)의 초대전에도 출품하는 등 남편과 함께 세계 여러 곳에서 부부전을 가졌다.

1961년 이후 국전(國展) 심사 위원, 서울 특별시 문화 위원을 지냈고, 성신 여자 사범 대학교(聖信女子師範大學校) 강사가 되었다.

1964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남편과 함께 미국에 갔고, 1969년에는 뉴욕 플래트 그래픽 센터와 봅 블랙번(Bob Blackburn) 판화 연구소에서 판화를 연구하여 동양화의 실험적 의욕을 판화라는 매체로 실현시켜 갔다.

1974년 신사임당(申師任堂)상을 받았고, 같은 해 귀국 판화전을 가지면서 이 방면에서의 새로운 시도를 전개할 무렵, 1976년 정초에 타계하였다.

초기 작품은 다분히 일본화(日本畫)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광복 뒤부터 1950년대에 이르러 여성 특유의 감성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설채(設彩)와 면분할(面分割)에 의한 화면 구성으로 동양화의 새로운 실험을 전개하였다.

1950년대에는 극히 일상적인 시정(市情) 풍경에서 구체적인 모티프(motif)를 찾았으나,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상을 극복한 순수 추상(抽象)의 세계로 나아감으로써 명쾌한 정신성을 추구하였다.

채색의 장식적 톤은 종합적으로 현대 서양의 입체파(立體派, cubism)가 도달한 조형의 방법론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작품으로 [달밤](1953년, 개인 소장)⋅[부엉이]⋅[수태(受胎)](1967년, 개인 소장)⋅[이른 아침]⋅[하얀 비둘기](1966년, 경기도 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화장(化粧)]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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