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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귀생(安貴生) -

- 생몰년 : ?~?
- 국    가 : 한국


安貴生 ?~?

조선(朝鮮, 1392~1910)의 화가.

출신 배경과 생몰년(生沒年) 등은 알 수 없지만 세조(世祖, 1417~1468, 조선의 제7대 왕. 재위 1456~1468)와 성종(成宗, 1457~1494, 조선의 제9대 왕. 재위 1469~1494) 연간(年間)에 활동하였으며, 최경(573)과 더불어 인물화에서 쌍벽(雙璧)을 이루었다.

종6품 아문(衙門)인 도화원[圖畫院, 성종(成宗, 1457~1494, 조선의 제9대 왕. 재위 1469~1494) 때 도화서(圖畫署)로 고쳤다.] 화원(畫員)으로, 주부(主簿)에 이르렀다.

1454년(단종 2년) 산천 형세를 잘 아는 예조참판(禮曹參判) 정척(鄭陟, 1390~1475, 조선의 문신)과 지도(地圖)에 밝은 직전(直殿) 양성지(梁誠之, 1415~1482, 조선의 문신이며 학자) 등과 함께 수양 대군[首陽大君, 1417~1468, 세종의 둘째 왕자. 뒷날의 세조(世祖). 조선의 제7대 왕. 재위 1455~1468]이 팔도(八道) 및 서울의 지도를 제작하는 데 참여하였다.

1455년(단종 3년)에는 왕명으로 [금강산도(金剛山圖)]를 그렸고, 부사직(副司直)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녹훈(錄勳)되었다.

1457년(세조 3년) 왕세자[덕종(德宗), 1438~1457, 추존왕(追尊王). 조선의 제7대 왕 세조의 아들이며 제9대 왕 성종의 아버지]의 병이 위독할 때 왕명으로 최경과 함께 그의 초상을 그렸다.

1472년(성종 3년)에는 배련(裵連, ?~?, 조선의 화가)⋅최경과 함께 소헌 왕후(昭憲王后, 1395~1445, 조선의 제4대 왕 세종의 비)⋅세조⋅예종(睿宗, 1450~1469, 조선의 제8대 왕. 재위 1468~1469)⋅덕종 등의 어진(御眞) 제작에 참여하여 화원의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당상관(堂上官)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문신(文臣)들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1475년 최경과 함께 궁궐수리도감(宮闕修理都監)의 감화(監畫)로 활약한 뒤 사용(司勇)으로 승직(昇職)되었고, 1476년에는 배련⋅최경과 함께 세조 어진을 모화(模畫)하였다.

현재 그의 확실한 진작(眞作)은 없고 중국 명(明)나라(1368~1644) 여기(311)의 원체화(院體畫)풍을 연상시키는 [화조도(花鳥圖)](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 한 점이 전칭(傳稱)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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