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ㅇ>아>안견  

인쇄 하기  html이나 txt파일로 저장 합니다.  원하시는 곳에 붙여넣기 하세요.  글자 크기 크게 글자 크기 작게
- 안견(安堅) -

- 생몰년 : ?~?
- 국    가 : 한국


安堅 ?~?

조선(朝鮮, 1392~1910)의 화가.

자(字)는 가도(可度)⋅득수(得守), 호(號)는 현동자(玄洞子)⋅주경(朱耕), 본관(本貫)은 지곡(池谷).

1400년쯤을 전후하여 태어나 세종(世宗, 1397~1450, 조선의 제4대 왕. 재위 1419~1450)대에 활동하고 세조(世祖, 1417~1468, 조선의 제7대 왕. 재위 1456~1468) 연간(年間)까지 활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종6품 아문(衙門)인 도화원[圖畫院, 성종(成宗, 1457~1494, 조선의 제9대 왕. 재위 1469~1494) 때 도화서(圖畫署)로 고쳤다.] 화원(畫員)으로, 선화(善畫)를 거쳐 종4품 호군(護軍)까지 승진하였는데, 이는 조선 초기의 화원으로서 한품(限品)인 종6품의 제한을 깨고 승진한 최초의 예가 된다.

1442년(세종 24년) 안평 대군(安平大君, 1418~1453, 세종의 셋째 아들이며 서예가) 초상을 비롯하여 [이사마 산수도(李司馬山水圖)](1443년)⋅[팔준도(八駿圖)](1446년)⋅[대소가 의장도(大小駕儀仗圖)](1448년)⋅[동궁 의장도(東宮儀仗圖)](1448년) 등을 그려 세종 때 화단(畫壇)의 제일인자로 활약하였다.

[팔준도]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69장의 내용을 형상화한 것으로,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제작된 것이다. 이 그림은 비슷한 목적으로 제작된 중국 당(唐)나라(618~907) 태종(太宗, 600~649, 중국 당나라의 실질적인 창건자이며 제2대 황제. 재위 626~649)의 [팔준도]를 모범으로 삼아 그린 것으로, 이후 세조의 [십이준도(十二駿圖)]로 이어지면서 조선 시대 준마도(駿馬圖)의 고전(古典)이 되었다.

화풍(畫風)은 원(元)나라(1271~1368) 초 서화(書畫)의 천재 조맹부(539)의 구륵(鉤勒, 윤곽을 가늘고 엷은 쌍선으로 묶어서 그리고 그 안을 채색하는 기법) 선염법(渲染法, 먹이나 색이 짙고 옅은 단계로 종이에 번지듯 배어나는 화법으로, 붓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을 바탕으로 하되, 섬세한 필치를 사용하고 초원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조선의 학자이며 문신)의 [보한재집(保閑齋集)]에 따르면, 안견은 안평 대군을 가까이 섬기면서 안평 대군이 가지고 있던 고화(古畵)들을 섭렵하였다.

총민하고 정박(精博)하였으며, 안평 대군의 후원으로 옛 그림을 많이 보면서 그 요체(要諦)와 여러 대가(大家)들의 좋은 점을 취하고 절충하여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이룩하였다.

경작(耕作)⋅노안(蘆雁)⋅누각(樓閣)⋅말[馬]⋅매죽(梅竹)⋅의장도(儀仗圖)⋅인물⋅해청(海靑)⋅화초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으며, 특히 산수화(山水畫)를 잘 그려 당시 필적(匹敵)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일본 덴리 대학교(天理大學校) 중앙 도서관에 있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1447년, 106.5×38.7cm)만이 확실한 진작(眞作)으로 전하고 있는데, 이 그림은 1447년(세종 29년) 안평 대군을 위하여 그린 것이다. 안평 대군의 자필(自筆) 표제와 발문(跋文)과 시(詩), 20명에 이르는 당대(當代) 학자들의 찬문(撰文)이 곁들여진 시⋅서(書)⋅화(畫)를 망라한 종합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칭(傳稱)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28.5×35.2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는 북송(北宋, 960~1126)의 이곽파(李郭派) 화풍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경물(景物)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구도적 특색을 비롯하여 공간 개념과 필법(筆法) 등에서 한국적인 특성을 짙게 띠고 있다.

이러한 화풍은 당시 많은 화가들이 추종하여 조선 초기의 대표적 화파인 안견파를 형성시켰으며, 강효동(姜孝同, ?~?, 조선의 화원)⋅김명국(72)⋅김시(77)⋅석경(石敬, ?~?, 조선의 화원)⋅신사임당(273)⋅이불해(416)⋅이상좌(423)⋅이성길(李成吉, 1562~?, 조선의 문신이며 화가)⋅이정(458)⋅이정근(460)⋅이징(469)⋅이흥효(479)⋅정세광(鄭世光, ?~?, 조선의 선비 화가) 등 조선 초기는 물론 중기의 화가들에게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발휘하였다. 또한 일본 선종(禪宗)의 창시자 다이코 조세쓰(135)의 제자이며 승려 화가인 슈분(264) 등을 통하여 일본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6~1573년) 수묵(水墨) 산수화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김홍도(110)⋅장승업(497)⋅정선(522)과 함께 ‘조선 시대의 4대 화가’로 손꼽힌다.

안견이 남긴 작품은 기록에 상당수가 보이나, 그 중에서 제작 연도(年度)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442년(세종 24년)에 제작된 [비해당 25세진], 1443년의 [이사마 산수도], 1445년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보한재집]에 기록되어 있는 [팔경도(八景圖)] 등 30점, 1446년과 1447년에 제작된 [팔준도], 1447년 이전에 그린 [임강완월도(臨江翫月圖)], 1447년에 제작된 [몽유도원도], 1448년(세조 10년)에 그린 [대소가 의장도], 1464년에 중국 사신을 위하여 그린 [묵죽도(墨竹圖)]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모두 없어져서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오직 [몽유도원도]만이 남아 있다.

이 밖의 전칭 작품으로 경기도 과천(果川) 국립 현대 미술관(國立現代美術館)에 있는 [다경산수도(多景山水圖)]⋅[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31.1×35.4cm)⋅[적벽도(赤壁圖)](102.3×161.5cm)⋅[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 등이 있다.

상위  이전  다음


제작 : 동방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