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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 기치지로(安藤吉次郞) -

일본의 화가이며 학자.

본명(本名)은 안도 기치지로(安藤吉次郞) 가쓰사부로(勝三郞), 호(號)는 군가쿠(君嶽). 고칸(江漢) 또는 시바슌(司馬峻)이라고도 한다.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이곳에서 죽었다.

서양의 문화와 학문을 일본에 소개하였다. 일본에서 서양식 유화(油?)의 선구자(先驅者)이며 에칭(etching)을 최초로 제작하였다.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 1603~1867, 에도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가노파(狩野派, 중국적인 소재와 기법을 중시하는 일본의 회화 유파)의 스승에게 그림을 배운 뒤 스즈키 하루노부(266)에게 목판화(木版?)를 배웠다. 스승의 화풍(?風)을 모방하여 심지어 자기의 판화에 스즈키 하루노부의 서명(署名)을 써 넣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하루시게(春重)’라는 서명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우키요에[浮世繪,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6~1573)부터 도쿠가와 시대 말기에 서민 생활을 바탕으로 제작된 회화의 한 양식. 일반적으로는 목판화를 뜻하며, 그림 내용은 대부분 풍속화이다.] 양식을 생기가 없어 보인다고 여겨, 명암법(明暗法, chiaroscuro, 대상의 형태를 관찰하여 빛의 현상에서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 관계 및 그 변화를 파악하여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방법. 음영법)과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을 사용하는 서양식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 회화 양식을 받아들였다.

서양 문화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특히 마에노 료타쿠(前野良澤, 1723~1803, 일본의 학자이며 의사) 및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內, 1728?~1779, 일본의 학자이며 문인·작가·화가)와의 긴밀한 교류를 통하여 더욱 깊어졌다. 당시에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외국 서적인 네덜란드 서적을 연구하여 에칭과 유화를 배웠다.

많은 시행 착오를 거친 끝에 최초의 에칭을 찍어 내는 데 성공하였는데, 이러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이 <미메구리노케이즈(三?景圖)>(1783)이다.

1788년에 에도를 떠나 규슈(九州) 북서부 나가사키(長崎)로 여행하였는데, 당시 나가사키는 대외 무역이 개방된 유일한 항구였다. 이곳에서 살면서 데지마섬(出島)의 네덜란드 상관(商館)을 방문하여 서양 학문을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였는데, 이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사이유료단(西遊旅譚)>(1794)에 잘 나타나 있다.

나중에 네덜란드 천문학에 관한 전집(全集)을 펴내고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 폴란드의 천문학자)의 지동설(地動說)을 동판화(銅版?)로 설명하는 데 힘썼다. 또한 <가마쿠라의 시치리 해변도(鎌倉七里浜圖)>·<이국 풍경 인물도(異國風景人物圖)> 등의 유화 두 작품은 그가 받아들인 서양화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판화 <시노바즈노이케(不忍圖)>(도쿄 국립 박물관) 등을 제작하였다.

1799년에는 <세이요가단(西洋?談)>을 집필하여 서양화의 사실주의의 기본 원리를 해설하였다.

만년(晩年)에는 공자[孔子, B.C.551~B.C.479, 중국 춘추(春秋) 시대의 교육자이며 철학자·정치 사상가. 유교의 개조(開祖)]·노자[老子, ?~?, 중국 고대의 철학자, 도가(道家)의 창시자] 등 중국의 성현(聖賢)들을 연구하였으며, 선종(禪宗)에 입문하여 혼슈(本州) 간토 평야(關東平野) 남서부 가나가와현(神奈川縣) 가마쿠라(鎌倉)의 엔가쿠사(圓覺寺) 은둔지에서 참선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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