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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도만(嚴道晩) -

- 생몰년 : 1915~1971
- 국    가 : 한국


嚴道晩 1915. 3. 29.~1971. 9. 3.

북한의 화가.

서울에서 태어났다.

1929년 서울 주교 공립 보통 학교(舟橋公立普通學校)를 마치고 중앙 청년 학교(中央靑年學校)에 입학하여 김종태(101)에게 유화(油畫)를 배우면서 그림을 시작하였다.

중앙 청년 학교를 중퇴한 뒤, 1932년 유화 [소년상(少年像)], 1933년 [좌상(坐像)]을 그렸다.

1936년부터 유한 양행(柳韓洋行) 미술부장으로 일하면서 송정훈(宋政勳)⋅임군홍(483)과 녹과회(綠果會)를 결성하여 동인전(同人展) ‘녹과전(綠果展)’을 가졌으며, 1939년에는 중국으로 가서 한커우(漢口)에서 미술 광고사의 미술부에 입사하였고, 이 무렵에 세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일제(日帝) 강점기에는 주로 생계를 위한 풍경화를 그렸는데, 이 무렵의 작품으로 [전적](1938년)⋅[항구 풍경](1943년)⋅[북경 고궁(北京古宮)](1945년) 등이 있다.

1946년 조선 산업 미술가 협회(朝鮮産業美術家協會) 창립 회원을 거쳐, 서울에서 좌익(左翼) 미술 활동을 하면서 [락산 빈민굴 풍경](1947년)⋅[녀인상(女人像)](1947년) 등을 그렸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같은 해 9월 월북(越北)하여 1953년 7월 휴전 때까지 국립 조선 미술 제작소(國立朝鮮美術製作所)와 농민 신문사(農民新聞社) 등에서 미술과 관련된 활동을 하였는데, 이 무렵의 작품으로 [차비하라 겨울날 준비](1951년)⋅[철조망을 뚫고](1951년) 등 주로 유화⋅선전화⋅출판화 등을 그렸다.

조선 미술가 동맹(朝鮮美術家同盟) 현역 미술가로 1971년 죽을 때까지 출판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이 밖의 작품으로 유화 [돌아오는 인민들](1954년)⋅[신설되는 평양 방직 공장](1955년)⋅[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1958년)⋅[첫 전투에서 승리하자](1961년), 수채화 [우리 어머니](1958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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