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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강렬(劉康烈) -

- 생몰년 : 1920~1976
- 국    가 : 한국


劉康烈 1920~1976. 11. 7.

한국의 염색 공예가이며 판화가(版畫家).

함경 남도 북청(北靑)에서 태어났다.

13살에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시립 여자부 중학교(東京市立女子部中學校)를 다녔고, 1940년 니혼 미술 학교(日本美術學校) 공예 도안과에 입학하여 주로 염색과 직조 공예를 공부하였다.

이듬해부터 일본 공예가 협회(日本工藝家協會) 전람회에 염색 작품을 출품하였고, 사이토 공예 연구소(齋藤工藝硏究所)에서 직인(職人) 기술을 익혔다.

1944년 니혼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귀국하였다.

6⋅25 전쟁 때 월남(越南)하여 부산(釜山)에서 피난 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는데, 이 무렵에 박고석(194)⋅이중섭(467)⋅장욱진(500)⋅최순우(崔淳雨, 1916~1984, 한국의 미술 사학자이며 미술 평론가) 등을 만났다.

1951년 경상 남도 통영(統營)에 나전 칠기 기술원(螺鈿漆器技術院) 강습소를 창설하였다. 당시에 같은 고향 사람인 이중섭을 강습소로 자주 불러 제작을 하게 하였는데, 현재 남아 있는 통영 시절의 작품이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1954년 5월 무렵 통영의 한 다방에서 이중섭⋅장윤성⋅전혁림(516)과 4인전을 열었다.

1954년부터 박물관에서 일하다가, 1958년 록펠러 재단(財團)(Rockefeller Foundation)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가서, 뉴욕시 브루클린(Brooklyn)의 프레트 미술 학교(Pratt Institute)에서 1년 동안 공예를 공부하였다.

1958년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염색 작품 활동을 통하여 침체된 한국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섬유 공예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미국에서는 판화에 주력하여 1959년 ‘미국 현대 판화가 100인전’에 유일한 동양인으로 초대 출품하였는데, 이 전시에서 전통 설화(說話)를 주제로 하여 에칭(etching) 연작(聯作)을 선보였다. 이어 캘리포니아⋅워싱턴(Washington D.C.) 등지의 국제 판화전에 초대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1959년 말에 귀국하여 홍익 대학교(弘益大學校)에 출강, 산업 대학원장 등을 지내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 냈다.

한국적 설화와 조선(朝鮮, 1392~1910) 시대 민화(民畫)에 등장하는 제재(題材)가 많이 다루어져 전통미의 현대적 해석과 표현에 역점을 두었고, 색채 대비의 구사력(驅使力)이 뛰어났다.

1962년 서울 특별시 문화상, 1970년 대한 민국 무궁화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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