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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잔(髡殘) -

- 생몰년 : 1612~1674
- 국    가 : 중국


髡殘 1612~1674

중국 청(淸)나라(1616~1912)의 화가.

자(字)는 개구(介丘), 호(號)는 백독(白禿)⋅석계(石溪)⋅석독(石禿), 스스로 잔도인(殘道人)⋅석도인(石道人)⋅전주도인(電住道人) 등으로 일컬었다. 속성(俗姓)은 유씨(劉氏).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출가(出家)하여 곤잔이라고 하였다.

후난성(湖南省) 둥팅호(洞庭湖) 서안의 무릉[武陵, 지금의 창떠(常德)]에서 태어났다.

반청 운동(反淸運動)에 참가하였고 명(明)나라(1368~1644)가 멸망한 뒤에는 울분하여 승려가 되었다.

43세 이후에는 장쑤성(江蘇省) 난징(南京)에 정착하여 대보국사(大報國寺)에 있었고, 나중에 뉴서우산(牛首山) 유서사(幽栖寺)로 옮겼다.

성품이 강직하고 사귐에 신중하였고, 말수가 적었으며, 불학(佛學)에 대해서 조예가 깊었다. 이름난 산과 절경을 두루 유람하였고, 많은 책을 읽었다. 그와 교유(交遊)한 사람들은 주로 공현(40)⋅낭장인(浪杖人)⋅장요성(張瑤星)⋅정정규(528) 등과 같은 학식이 풍부하고 절개 있는 사람들이었다.

유민(遺民) 화가로, 산수(山水)를 그리는 데 뛰어났고, 마른 붓으로 가볍게 주름을 짓는 기법에 능숙하였다. 산수화에서 한적하고 쓸쓸한 풍경과 무미건조하고 생기 없는 필묵을 되도록 피하였다. 그림은 종횡으로 거침이 없고 대기운이 왕성하며 고국의 대지(大地)와 산하(山河)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충만해 있다. 필묵은 거친 듯하나 실제로는 매우 세련되고 힘이 있으면서도 소박하다.

만년(晩年)의 작품은 더욱 분방하고 호탕하며 생기가 있다. 남아 있는 작품은 100폭 정도로 석도(240)의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한 폭 한 폭이 모두 온 정신을 쏟은 작품으로 그림 윗부분의 시문(詩文)에서부터 매우 엄숙하고 진지하다.

남종화가(南宗畫家)의 두 거장(巨匠) 석도⋅주탑(561)과 비교하여 그 불도(佛道) 수행은 앞섰으나, 화풍(畫風)은 그들만큼 독창적⋅개성적인 점이 적고, 옛 것을 상당히 모방한 데가 있다.

거연(26)⋅동기창(153)⋅미씨 부자[米氏父子, 중국 북송(北宋, 960~1126)의 문인화가 미불(187)과 그의 아들 미우인(191)]⋅심주(285) 등과 세교(細巧)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른바 ‘원말 4대가(元末四大家)’인 왕몽(341)과 황공망(620)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왕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배운 것을 조화시켜 새롭게 창조하려고 한 점이다.

공현(40)은 그와 정정규를 합쳐 ‘이계(二溪)’라고 불렀으며, [화사(畫史)]에서도 그를 석도와 함께 ‘이석(二石)’이라고 일컬었고, 석도⋅주탑⋅홍인(617)과 함께 ‘4대 고승(高僧)’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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