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ㅇ>이>이광사  

인쇄 하기  html이나 txt파일로 저장 합니다.  원하시는 곳에 붙여넣기 하세요.  글자 크기 크게 글자 크기 작게
- 이광사(李匡師) -

- 생몰년 : 1705~1777
- 국    가 : 한국


李匡師 1705(숙종 31)~1777(정조 1)

조선(朝鮮, 1392~1910)의 서화가(書畫家)이며 양명학자(陽明學者).

자(字)는 도보(道甫), 호(號)는 원교(圓嶠)⋅수북(壽北),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소론(少論)이 영조(英祖, 1694~1776, 조선의 제21대 왕. 재위 1724~1776) 때 세력을 잃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였고, 1755년(영조 31년) 나주 괘서 사건[羅州掛書事件, 을해옥사(乙亥獄事)]에 큰아버지 이진유(李眞濡)가 처벌받을 때 연좌되어 함경도 회령(會寧)에 유배되었다.

그의 학문이 이름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유배지를 전라도 진도(珍島)로 옮겨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조선 시대 양명학(陽明學)의 태두(泰斗) 정제두(鄭劑斗, 1649~1736, 조선의 학자)에게 양명학을 배워 아들에게 전수하였으며, 윤순(382)에게 글씨를 배웠다. 진서(眞書)⋅초서(草書)⋅전서(篆書)⋅예서(隸書)에 두루 뛰어났고 원교체(圓嶠體)라는 독특한 필체를 이룩하였다.

그림도 산수(山水)⋅인물⋅초충(草蟲) 등 여러 분야에 뛰어났고, 소박한 문인 취향의 화풍(畫風)을 이루었다. 인물화는 남송(南宋) 원체화(院體畫)풍을 보이며, 산수화는 간결하고 담백한 남종화(南宗畫)의 특징을 나타낸다.

문학 작품으로는 단군[檀君, 한민족의 시조(始祖)로 받드는 고조선(古朝鮮, 檀君朝鮮)의 첫 왕.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 이래의 역사를 읊은 [동국악부(東國樂府)] 30수와 귀양지 진도의 풍속과 생활을 그린 [기속(記俗)] 등이 전한다.

지은 책으로 서예 이론서 [원교서결(圓嶠書訣)]⋅[원교집선(圓嶠集選)] 등이 있고, 서화 작품으로 [고승간화도(高僧看畫圖)]⋅[산수도(山水圖)]⋅[행서 사인서(行書四言詩)] 등이 있으며, 글씨로는 [두보시(杜甫詩)](15×22.5cm, 경기도 용인 호암 미술관)⋅[영의정 이경석표(領義政李景奭表)] 등이 있다.

상위  이전  다음


제작 : 동방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