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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규(李昞圭) -

- 생몰년 : 1901~1974
- 국    가 : 한국


李昞圭 1901~1974

한국의 서양화가.

호(號)는 오하(梧下).

경기도 안성(安城)에서 태어났으며, 1925년 일본 도쿄 미술 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귀국한 뒤 일제(日帝)가 주관한 조선 미술 전람회(鮮展)에는 출품하지 않고, 우리 나라 최초로 1918년 창립된 순수 근대 미술 동인회(同人會)인 서화 협회(書畫協會) 전람회(協展)에만 1936년의 마지막 15회까지 참여하였다.

1934년에는 당시 정부 주도로 아카데미즘을 구축해 가던 선전(鮮展)의 보수성에 저항하여, 개성 있는 서양화가들과 목일회(牧日會)를 결성하고, 그 해 서울 종로(鐘路) 화신 백화점(和信百貨店)에서 제1회 작품전을 열었다. 그러나 단체의 이름이 일본을 배격하는 뜻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사용 금지당함에 따라 모임이 해체된 상태였다가, 1937년 이름을 목시회(牧時會)로 바꾸고 활동을 재개하였다.

회원은 이병규를 비롯하여 구본웅(47)⋅길진섭(60)⋅김용준(86)⋅백남순(211)⋅송병돈(宋秉敦, 1902~1967, 한국의 화가)⋅신홍휴(申鴻休, 1911~1961, 한국의 화가)⋅이마동(407)⋅이종우(464)⋅임용련(486)⋅장발(495)⋅황술조(623) 등 주로 도쿄 미술 학교 출신이었다. 그림의 성향은 대개 일본 양화(洋畫)의 기법을 따르는 보편적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와 자연주의(自然主義, naturalism) 범주였으나, 파리 유학파를 중심으로 한 서양의 순수주의(純粹主義, purisme) 사조(思潮)를 따르는 야수파(野獸派, fauvisme<Wild Beasts>)적인 표현이나 과감한 반전통적 방법을 시도하는 성향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개인의 개성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사회적 배경과 양화에 대한 인식의 저하를 극복하지 못하고, 당시 가장 주목할 만한 단체였던 목시회는 1938년 ‘9인 양화 동인전’을 끝으로 활동을 마감하였다.

광복된 뒤에는 대한 민국 미술 전람회(國展)와 목우회(木友會)를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국전(國展) 추천 작가⋅초대 작가⋅심사 위원 및 예술원(藝術院) 회원 등이 되었다.

화풍(畫風)은 온실 전경(前景)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그 밖에 젊은 연인상(戀人像) 등을 사실적(寫實的)인 기법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1962년 문화 포장, 1964년 서울 특별시 문화상, 1967년 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작품으로 [국화]⋅[선인장과 팔손이]⋅[온실 속의 여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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