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 1718~1777
- 국 가
: 한국
李聖麟 1718(숙종 44)~1777(정조 1)
조선(朝鮮, 1392~1910)의 화가.
자(字)는 덕후(德厚), 호(號)는 소재(蘇齋),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종6품 아문(衙門)인 도화서(圖畫署) 화원(畫員)으로, 주부(主簿)와 첨사(僉事)를 지냈다.
1747년(영조 23년) 최북
(575)과 함께 통신사(通信使)의 수행 화가로 일본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산수화(山水畫)와 도석 인물화[道釋人物畫, 신선(神仙)이나 불교의 고승(高僧)⋅나한(羅漢) 등의 인물을 그린 그림, 道釋畫]에 능하였으며, 소나무⋅대나무를 잘 그렸다. 산수화는 남종화(南宗畫)풍을 따랐고 대나무와 도석 인물은 화보(畫譜)풍으로 그렸다.
일본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1867~1912년) 때의 책 [고화비고(古畫備考)]의 ‘조선 서화전(朝鮮書畫傳)’에 그가 일본에서 그렸던 [묵매도(墨梅圖)]⋅[송죽도(松竹圖)]의 찬문(贊文)이 실려 있으며, [화사회요(畫史會要)]에는 묵죽(墨竹)과 묵매(墨梅, 수묵화의 매화) 그림이 실려 있다.
작품으로 [산수도(山水圖)](개인 소장)와 [수노인도(壽老人圖)](개인 소장)가 있고, 평양 미술관(平壤美術館)에 [산수도]와 [소요도(逍遙圖)] 쌍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