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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발(張勃) -

- 생몰년 : 1901~2001
- 국    가 : 한국


張勃 1901~2001. 4. 8.

한국의 서양화가이며 미술 교육자.

호(號)는 우석(雨石).

인천(仁川)에서 태어났다.

제2공화국(1960. 8. 12.~1961. 5. 16.) 때 총리를 지낸 장면(張勉, 1899~1966, 한국의 정치가)의 아우이다.

1922년 일본 도쿄 미술 학교(東京美術學校)를 거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에서 미학(美學)과 미술사(美術史)를 공부하고 1925년 귀국하였다. 이러한 연구 과정은 귀국한 뒤 우리 나라의 미술 교육 및 미술 행정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초기에는 한국 천주 교회를 위한 성화(聖化) 작업을 많이 하였고, 한국 가톨릭교의 발전과 작품 생활, 미술 교육에 전념하였다.

1934년 조선 미술 전람회(鮮展)를 거부한 서양화가들이 목일회(牧日會) 창립하였고, 그 해 서울 종로(鐘路) 화신 백화점(和信百貨店)에서 제1회 작품전을 가졌다. 그러나 단체의 이름이 일본을 배격하는 뜻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사용 금지당함에 따라 모임이 해체된 상태였다가, 1937년 이름을 목시회(牧時會)로 바꾸고 활동을 재개하였다.

회원은 장발을 비롯하여 구본웅(47)⋅길진섭(60)⋅김용준(86)⋅백남순(211)⋅송병돈(宋秉敦, 1902~1967, 한국의 화가)⋅신홍휴(申鴻休, 1911~1961, 한국의 화가)⋅이마동(407)⋅이병규(412)⋅이종우(464)⋅임용련(486)⋅황술조(623) 등 주로 도쿄 미술 학교 출신이었다. 그림의 성향은 대개 일본 양화(洋畫)의 기법을 따르는 보편적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와 자연주의(自然主義, naturalism) 범주였으나, 파리 유학파를 중심으로 한 서양의 순수주의(純粹主義, purisme) 사조(思潮)를 따르는 야수파(野獸派, fauvisme<Wild Beasts>)적인 표현이나 과감한 반전통적 방법을 시도하는 성향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개인의 개성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사회적 배경과 양화에 대한 인식의 저하를 극복하지 못하고, 당시 가장 주목할 만한 단체였던 목시회는 1938년 ‘9인 양화 동인전’을 끝으로 활동을 마감하였다.

한편, 김복진(金復鎭, 1901~1940, 한국의 조각가이며 미술 평론가⋅문예 이론가⋅연극인⋅사회 운동가. 우리 나라 최초로 서구식 조각 교육을 받았다.)⋅안석주(297) 등과 선전(鮮展)을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켰으나, 경찰의 탄압과 이간책으로 실패하였다.

광복된 뒤에는 한국 미술가 협회(韓國美術家協會)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서구 미술 정보에 대한 이해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사실 작가 회원전⋅한국 현대 서양화 대전 등에 출품하였고, 대한 민국 예술원상⋅서울 특별시 문화상을 받았으며, 대한 민국 미술 전람회(國展) 심사 위원⋅예술원(藝術院) 회원을 지냈다.

작품 활동보다는 교육에 힘써 서울 대학교 미술 대학 학장과 중앙 대학교(中央大學校) 교수 등을 지내면서 후학들에게 실기뿐 아니라 미술 이론을 가르쳤다.

만년(晩年)에는 미국으로 가서 살았으며, 동양적 정서가 강하게 풍기는 비구상화(非具象畫) 계열의 작품에 전념하였다.

한국 서양 화단에서 선구적인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 1996년 서울 대학교 개교 50주년 행사 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었으며, 동상(銅像)이 세워졌다.

작품으로 [성 김대건 신부상(聖金大建神父像)](1920년, 50×60cm)⋅[12사도상(使徒像)]⋅[작품 A]⋅[작품 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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