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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선(錢選) -

- 생몰년 : ?~?
- 국    가 : 중국


錢選 ?~?

중국 송(宋)나라(960~1270) 말 원(元)나라(1271~1368) 초의 화가.

자(字)는 순거(舜擧), 호(號)는 옥담(玉潭)⋅손봉(巽峰)⋅삽천옹(霅川翁)⋅습란옹(習嬾翁).

저장성(浙江省) 우싱현[吳興縣, 지금의 후저우(湖州)]에서 태어났다.

남송(南宋, 1127~1279) 경정 연간(景定年間, 1260~1264년)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及第)하고, 원나라 초 서화(書畫)의 천재 조맹부(539)를 우두머리로 하는 ‘우싱팔준(吳興八俊)’의 한 사람이다. 그보다 10여 세 아래인 조맹부는 젊어서 그에게 그림 지도를 받았으므로, 원나라 화단(畫壇)의 복고 운동은 이 두 사람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화우(畫友)이며 문인(文人)인 왕연(349)⋅조맹부⋅진중인(陳仲仁) 등과 ‘우싱파(吳興派)’라는 한 파를 이루었다.

송나라가 멸망하고 조맹부가 원나라 조정(朝廷)의 부름을 받자, 그 일파가 모두 그 연줄로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전선만은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면서 일생을 마쳤다.

인물⋅산수(山水)⋅화조(花鳥)⋅소과(蔬果)를 잘 그렸는데, 인물화는 북송(北宋, 960~1126)의 이공린(393), 산수화는 북송의 귀족 화가 조영양(546), 청록 산수는 조백구(540), 화조화는 조창(553)을 본받았는데, 화조화는 서희(238)에 의하여 창시된 수묵 담채(水墨淡彩)의 서씨체(徐氏體)에 황전(628)에 의하여 시작된 황씨체(黃氏體)를 도입하였고, 산수화는 남북 양종(兩宗)의 경향을 종합한 복고적인 것이었다.

‘그림 속에 선비의 기개가 담겨 있어야 하며, 남송 화원의 기풍을 벗어나 당(唐)나라(618~907)⋅오대(五代, 907~960)⋅북송의 화법(畫法)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사실상 복고를 통하여 새로움을 추구한 것이었다.

화초의 절지화(折枝畫)에 뛰어났으며, 뜻에 맞는 작품을 만날 때마다 시를 그 위에 지어 놓어 창작 의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화풍(畫風)은 사실적(寫實的)이고 중후한 채색의 아름다움을 본령(本領)으로 하였다. 특히 도연명[陶淵明, 365~427, 중국 동진⋅남북조 시대 남조(南朝) 송나라의 시인]을 그린 것은 고결한 뜻과 행동을 높이 평가하였기 때문이며, 죽림칠현[竹林七賢, 중국의 후한 말에서 위나라를 거쳐 서진(西晉, 265~316)에 이르는 동안(2세기 말~4세기 초), 문학을 사랑하고 술과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면서 세상을 등지고 대나무 숲에 모여서 청담(淸談)을 나누었던 산도[山濤, 205~283, 중국 진(晉)나라의 학자이며 정치가]⋅완적(阮籍, 210~263,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사상가이며 문학자⋅시인)⋅완함(阮咸)⋅왕융[王戎, 234~305, 중국 진(晉)나라의 문인이며 정치가]⋅유령(劉伶, 221?~300?, 중국 위진 시대의 문인)⋅향수(向秀, 227?~277, 중국 위진 시대의 철학자이며 천문학자)⋅혜강(嵆康, 223~262,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시인이며 철학자) 등 일곱 사람의 지식인을 일컫는 말.]을 그리면서 산도와 왕융을 그리지 않은 것은 그들이 변절하여 새 조정(朝廷)에서 벼슬을 하였기 때문이다.

소과와 화조를 그린 것은 자신의 굳은 지조(志操)와 전원(田園) 생활의 만족을 표현한 것이다. [석서도(碩鼠圖)]에는 통치자의 잔학함과 뻔뻔스러움을 풍자한 것이 잘 나타나 있다.

유유자적하게 지팡이를 들고 있는 도연명의 기개 높은 모습을 그린 [도연명상(陶淵明像)], 옅은 녹색과 짙은 먹을 사용하여 섬세하고 맑은 느낌을 주는 [부옥산거도(浮玉山居圖)], 색조가 맑고 우아하며 준법[皴法, 동양화에서 산애(山崖)나 암석의 굴곡 등의 주름을 그리는 화법. 산이나 흙더미 등의 입체감⋅양감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동양적 음영법(陰影法)]을 사용하여 장식미가 있는 [유거도(幽居圖)] 등이 있으며, [모란도(牡丹圖)]⋅[순도(筍圖)]⋅[절지계두화도(折枝鷄頭花圖)] 외에 장식적 화조도가 많이 전하여 온다.

시적(詩的)인 정서와 그림 속에 담긴 뜻이 공개(79)만큼 직설적이거나 비분강개(悲憤慷慨)하지는 않았지만, 회화사(繪畫史)에서 비교적 보기 드문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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