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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혁림(全爀林) -

- 생몰년 : 1916~
- 국    가 : 한국


全爀林 1916. 1. 21.~

한국의 화가.

경상 남도 충무(忠武)에서 태어났다.

1933년 통영 수산 전문 학교(統營水産專門學校)를 졸업하였으며, 1935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1938년 재야전(在野展)인 부산 미술전(釜山美術展)에 처음 출품하였으며, 2년 뒤 일본 화단(畫壇)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1949년 제1회 대한 민국 미술 전람회(國展) 이후 제2회(1953년)⋅제4회(1955년)⋅제10회(1961년)에서 입선⋅특선이 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등 1950년대에는 부산과 마산(馬山)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1954년 5월 무렵에는 경상 남도 통영(統營)의 한 다방에서 유강렬(366)⋅이중섭(467)⋅장윤성과 4인전을 열었다.

1956년부터 도기(陶器)를 연구하면서 도자 회화(陶瓷繪畫, Ceramic Paintings)를 발전시켰는데, 기존의 청자(靑磁)⋅백자(白磁)와 같은 장식적 도예(陶藝) 기법이 아닌, 옹기를 이용한 토속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세계를 표현하여 가장 한국적인 자연스러움의 미학(美學)으로 주목받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회화 이외의 매체에도 관심을 보였고, 1969년 제1회 회화⋅도예전(繪畫陶藝展)을 시작으로 몇 차례 작품전과 목조전(木彫展)을 열었고, 1992년에는 70여 점의 작품을 제작, 발표하였다.

반세기에 걸친 화력(畫力)을 통하여 추상(抽象)과 구상(具象)의 경계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표현 영역을 확대하였다. 자유로운 구성과 형태, 향토성 짙은 색채의 초기 구상 회화는 후기에 들어오면서 점차 추상화되었는데, 단순화와 응집화를 통하여 한국적 미감(美感)을 밀도 있게 표출하였다.

‘색채가 없는 세상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만큼 색채를 중요시하였는데, 민화(民畫)⋅단청(丹靑)⋅벽화 등의 색채 체계를 통한 보편적 한민족(韓民族)의 미의식(美意識)과 고향 충무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특징으로 한다.

창작 의욕이 매우 강하였는데, 육순(六旬)이 넘어서야 주목받은 것은 일본이나 서구 미술에 대하여 저항적이고 비타협적인 세계를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1962년 부산시 문화상, 1984년 충무시 문화상을 받았으며, 1984년 국전(國展) 심사 위원을 지냈다.

[갯마을]⋅[실내 누드]⋅[일월도]⋅[춤]⋅[충무항]⋅[현무도 Ⅰ](1992년, 130.3×162.2cm, 개인 소장) 등 유화(油畫)와 채색 옹기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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