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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돈인(權敦仁) -

- 생몰년 : 1783~1859
- 국    가 : 한국


權敦仁 1783(정조 7)~1859(철종 10)

조선(朝鮮, 1392~1910)의 문신(文臣)이며 서화가(書畫家).

자(字)는 경희(景羲), 호(號)는 이재(彛齋)⋅우랑(又閬)⋅우염(又髥)⋅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번상촌장(樊上村庄), 시호(諡號)는 문헌(文獻), 본관(本貫)은 안동(安東).

우의정(右議政)을 지낸 권상하(權尙夏, 1641~1721, 조선의 학자)의 5대손이며, 군수(郡守)를 지낸 권중집(權中緝, 1771∼1814)의 아들이다.

병조판서(兵曹判書)와 이조판서(吏曹判書)를 거쳐 1842년(헌종 8년)에는 우의정, 1845년에는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1851년(철종 2년) 철종(哲宗, 1831~1863, 조선의 제25대 왕. 재위 1849~1863)의 조상 경의군[敬義君, 1719~1728, 영조(英祖, 1694~1776, 조선의 제21대 왕. 재위 1724~1776)의 맏아들이며 사도 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형. 효장 세자(孝章世子), 진종(眞宗)]의 위패(位牌)를 종묘(宗廟)의 본전(本殿)에서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길 때 헌종(憲宗, 1827~1849, 조선의 제24대 왕. 재위 1834~1849)을 먼저 묘사(廟社)에 모실 것을 주장하였다가 파직(罷職)되어 8년 동안 유배되었고, 마지막 귀양지 충청 남도 연산(連山)에서 죽었다. 나중에 신원(伸寃)되었다.

조선 제일의 명필 김정희(99)는 그의 예서체(隸書體) 비문(碑文)에 관하여 ‘동국(東國)에는 전혀 없었던 신합(神合)의 경지’라고 칭찬하였다. [완당집(阮堂集)]에도 그의 글씨는 신위(276)의 것보다 힘이 있다는 평이 있다.

그림으로 [세한도(歲寒圖)](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가 있는데, 이는 김정희의 [세한도](1884년, 69.2×23cm, 국보 제180호, 개인 소장)와 비교될 만큼 높은 경지를 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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