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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겸(趙之謙) -

- 생몰년 : 1829~1884
- 국    가 : 중국


趙之謙 1829~1884

중국 청(淸)나라(1616~1912) 말의 문인(文人)이며 서가(書家)⋅화가.

자(字)는 위숙(撝叔)⋅익보(益甫), 호(號)는 매암(梅庵)⋅냉군(冷君)⋅비암(悲庵)⋅감료(憨寮), 만년(晩年)에는 무민(無悶)이라고 하였다.

저장성(浙江省) 웨저우(越州) 사오싱(紹興)에서 태어났다.

1858년 거인(擧人)에 합격하였고, 1860년 향시(鄕試)에 급제(及第)하였으나 베이징(北京)에서 치른 회시(會試)에는 다섯 차례 모두 실패하여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거나 서화(書畫) 또는 전각(篆刻)을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갔다.

여러 모로 예재(藝才)가 뛰어나 서화 외에 시⋅고문사(古文辭)⋅전각에도 솜씨를 보였다.

그림은 이선(425) 등 양저우(揚州) 계통에게 배우고, 석도(240)와 주탑(561)의 화풍(畫風)도 받아들였다. 묵색이 짙은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 필치를 구사(驅使)하며, 채색도 수분을 많이 머금은 농담(濃淡)의 차가 난다.

서위(236)와 운격(361)의 화풍을 따라 우아한 몰골화(沒骨畫, 윤곽선을 쓰지 않고 수묵⋅채색으로 형체를 짓는 그림)에 능하였으며, 화초⋅목석에도 뛰어나 근대 초 화초화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글씨는 안진경(顔眞卿, 709~784?, 중국 당나라의 서예가)을 공부하였고, 점차 청나라 제1의 비평가 포세신(包世臣, 1775~1855, 중국 청나라의 서예가)의 [역입평출(逆入平出)]의 용필법(用筆法)을 받아들여 북조비문(北朝碑文)을 따라 익혔으며, 왕성한 정열을 근대적 지성(知性)과 감각으로 조형함으로써 각체(各體)에 능하여 [북위서(北魏書)]라고 평가되는 독특한 서풍(書風)을 창시하였다.

전각은 등석여(鄧石如, 1743~1805, 중국 청나라의 서가)를 기초로 하여 이지적(理智的)이고 섬세하며 조용한 품격을 나타냈다.

말년에 장시성(江西省) 파양현(鄱陽縣)의 지사(知事)까지 올랐으나 과로로 죽었다.

작품으로 [비암잉묵(悲盦媵 貝 墨)]⋅[이금접당유묵(二金蝶堂遺墨)]⋅[이금접당인보(二金蝶堂印譜)]⋅[조위숙인보(趙撝叔印譜)]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매암집(梅庵集)]⋅[보환우방비록(補寰宇訪碑錄)]⋅[육조별자기(六朝別字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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