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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재해(秦再奚) -

- 생몰년 : 1691~1769
- 국    가 : 한국


秦再奚 1691(숙종 17)~1769(영조 45)

조선(朝鮮, 1392~1910)의 화가.

자(字)는 정백(井伯), 호(號)는 벽은(僻隱), 본관(本貫) 풍기(豊基).

무성군(茂城君) 진예남(秦禮南)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역관(譯官) 진시영(秦時英)이다. 종6품 아문(衙門)인 도화서(圖畫署) 화원(畫員)으로 첨사(僉使)를 지낸 허승현(許承賢)의 손자사위이며 역시 화원으로 사과(司果)를 지낸 진재기(秦再起)의 형이다.

진재해도 도화서 화원으로, 벼슬은 첨절제사(僉節制使)와 충익장(忠翊將)에 이르렀다.

어용모화도감(御容模畫都監)의 화공(畫工)이 되어 1713년(숙종 39년) 제작된 숙종(肅宗, 1661~1720, 조선의 제19대 왕. 재위 1675~1720) 어진(御眞) 도사(圖寫)의 주관화사(主管畫師)로 일하였는데, 숙종의 전신화(全身畫)를 그려 상을 받았다.

1727년에는 조영석(545)이 1726년 초고(草稿)를 그리고 1727년 윤색(潤色)을 가한 조영석의 맏형 조영복(1672~1728)의 초상화 [조영복 영정](80×154cm, 경기도 박물관)의 공복 본상(公服本像)을 그렸다. 이 초상화는 1732년 조영석이 완성하였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 ?~1728, 조선의 역신)의 난 때는 의병을 일으켜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나, 상훈(賞勳)을 사퇴하였다.

인물의 사생(寫生)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으며, 산수도(山水圖)도 잘 그렸는데, 남아 있는 [월화취적도(月下吹笛圖)](56.7×100cm, 서울 대학교 박물관) 외에 알려진 작품은 없다. [월하취적도]는 인물의 모습, 비스듬히 솟아오른 산의 형태와 그 표면 처리, 소나무 등에서 전형적인 절파(浙派, 중국 명나라 말기 때 발생한 회화의 한 파) 화풍(畫風)이 보인다. 그 뒤로 이와 같은 절파 화풍은 미세한 부분적 잔재만 남긴 채 실질적인 종말을 고하였기 때문에, 조선 시대 중기에 유행하였던 절파 화풍의 말미를 장식한 화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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