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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농(金農) -

중국 청(淸)나라(1616~1912)의 서예가이며 화가·시인.

자(字)는 수문(壽門), 호(號)는 동심(冬心)·사농(司農).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 첸탕(錢塘)에서 태어났다.

고향 항저우의 문인(文人) 사이에서 성장하여 시(詩)로 이름을 날렸다. 여행을 즐겨서 30세가 지나서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녔고, 일생 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시·서(書)에 정진하면서 문필(文筆) 생활을 하였다.

금석문(金石文)에 능통하고 시와 고문(古文)을 잘 지었으며, 상식을 넘어선 기행(奇行)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서풍(書風)도 특이하였다. 즉 한·위(漢魏) 이후의 석비(石碑)가 가진 고아(高雅)한 서풍을 좋아하였으며, 굵은 가로획과 가느다란 세로획으로 된 예서(隸書), 굵은 선(線)으로 된 해서(楷書)를 썼다. 자신의 서체(書體)가 팔분서(八分書)에서 연유하였다고 하여 스스로 ‘칠분반서(七分半書)’라고 일컬었다.

본격적으로 화필을 들어 그림을 업으로 삼게 된 것은 50세를 넘어서부터인데, 남종화(南宗?)의 형식주의(形式主義, formalism)적 잔재주 등을 배제하여, 깔끔하고 속되지 않은 독특한 개성적인 화풍(?風)을 이루었다.

시문(詩文) 이외에 고서화(古書?) 감정(鑑定)과 고미술(古美術)을 감식(鑑識)하는 안목도 뛰어났고, 그림은 산수(山水)·대[竹]·매화·말[馬] 등에 능숙하였으며, 만년(晩年)에는 불화(佛?)를 잘 그렸다.

지은 책으로 <동심선생 화죽제기(冬心先生?竹題記)>·<동심자사진제기(冬心自寫眞題記)>·<화불제기(?佛題記)> 등이 있고, 그림으로 <매화도(梅花圖)>·<묵매도(墨梅圖)>(모두 4폭, 1736)·<묵죽도(墨竹圖)>·<묵희(墨戱)> (1754)·<월하도(月下圖)>(1761) 등이 있다.

60세쯤부터는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에서 살면서 이른바 ‘양저우 팔괴(揚州八怪)’의 대표적 존재가 되었지만 평생을 고독하게 살았다.

‘양저우 팔괴’란 청나라 중기 양저우에서 활동한 8명의 화가, 즉 고상(高翔, 1688~1754)·김농·나빙(117)·왕사신(汪士愼, 1686~1762)·이방응(411)·이선(425)·정섭(523)·황신(624)을 이른다.

이들 외에 고봉한(34)·민정(閔貞, 1730~?, 중국 청나라의 문인화가)·화암(619)을 포함하여 양저우파(揚州派)라고도 한다. 이들은 대운하(大運河)의 수리(水利)와 소금 거래에 기반을 둔 호상(豪商)들의 원조를 받으려고 모여든 화가들로, 독자적인 화풍과 화역(?域)을 가지면서 당시의 전형적인 문인화(文人?)에서 벗어난 자유 분방한 그림을 그렸다. 시골에서 대도시로 올라와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고답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개성과 독창성을 중시, 당시로서는 기괴하게 여겨져 ‘괴(怪)’자가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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