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 1891~1929
- 국 가
: 일본
岸田劉生 1891. 6. 23.~1929. 12. 20.
일본의 서양화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1867~1912년)의 선각자이며 신문 기자였던 기시다 긴코(岸田吟香, 1833∼1905)의 넷째 아들로,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비교적 유복한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08년 하쿠바카이(白馬會) 서양화 연구소에 들어가서 외광파(外光派, 태양 광선 아래서 자연을 묘사한 화가, 즉 실내 광선이 아닌 야외의 자연 광선에 비추어진 자연의 밝은 색채 효과를 재현하기 위하여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 화파를 통틀어 일컫는 말.)의 지도자 구로다 세이키
(46)에게 배웠다.
1910년 문부성(文部省) 주최의 제4회 미술 전람회(文展)에서 풍경화 두 점이 입선되었으며, 이 무렵 문예 잡지 [시라카바(白樺)]를 통하여 후기 인상파(後期印象派, postimpressionism)와 야수파(野獸派, fauvisme<Wild Beasts>)의 영향을 받고 선명한 색채와 대담한 필치로 혁신적인 화풍(畫風)을 이루었다.
1912년에는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1883~1956, 일본의 시인이며 조각가) 등과 함께 일본에서 반자연주의(反自然主義, anti-naturalism) 회화 운동의 선봉이 된 퓨제인카이(木炭會)를 창립하였다. 그 뒤 북유럽 르네상스 회화의 영향을 받아 세밀한 사실화(寫實畫)로 화풍을 전환하였는데, 이를 두고 당시 화단(畫壇)에서는 시대 착오라고 비판하였다.
1915년 소도샤(草土社)를 창립하였으며,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 독일의 화가이며 판화가⋅미술 이론가)풍의 신비하고 섬세한 묘사로 초상화⋅정물화⋅풍경화를 발표하였다.
1918년부터 딸 레이코(儷子)를 모델로 한 작품을 많이 제작하였으며, 1922년 서양화 단체인 슌요카이(春陽會) 창립에 참여하였다. 이 무렵부터 가부키(歌舞伎, 일본의 고전 연극)⋅노[能, 일본의 난보쿠조(南北朝)~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6~1573년)에 성립된 극 이름]⋅나가우타(長唄, 가부키의 무용 음악을 담당하는 반주)를 가까이 접하면서 일본화(日本畫)도 그렸다.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난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교토(京都)로 이주한 뒤에 초기 우키요에[浮世繪,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부터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 1603~1867년, 에도 시대) 말기에 서민 생활을 기조로 하여 제작된 회화의 한 양식. 일반적으로는 목판화(木版畫)를 뜻하며, 그림 내용은 대부분 풍속화이다.]나 중국 송⋅원화(宋元畫)의 영향을 받아 동양적 표현을 곁들인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1929년 만주(滿洲)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혼슈(本州) 남서부 야마구치현(山口縣) 도쿠야마(德山)에서 객사(客死)하였다.
지은 책으로 [류세이 화집 및 예술관(劉生畫集及藝術觀)](1920년)⋅[초기 육필 우키요에(初期肉筆浮世畫)](1926년)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 [다섯 살 난 레이코의 상(儷子五歲之象)](1918년,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東京國立近代美術館>)⋅[레이코의 미소(儷子微笑)](1921년, 도쿄 국립 박물관)⋅[오마쓰상(於松像)](1921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