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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림(崔榮林) -

- 생몰년 : 1916~1985
- 국    가 : 한국


崔榮林 1916~1985

한국의 서양화가.

평양(平壤)에서 태어났다.

평양 광성 고등 보통 학교(光成高等普通學校) 미술반에서 활동하면서 일본 판화 협회(日本版畫協會) 전람회에 판화를 출품하였고, 20세 때인 1936년 제15회 조선 미술 전람회(鮮展)에 유화(油畫)를 출품, 입선하여 주목받았다.

1937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무나카타 시코(173)에게 판화를 배우고, 1938년 도쿄 다이헤이요 미술 학교(太平洋美術學校)를 졸업하였다.

1940년 박수근(204)⋅장이석(502)⋅황유엽(626) 등과 주호회(珠壺會)를 결성하고, 그 뒤 5년 동안 동인전(同人展)을 열었다.

평양 숭의 여자 중학교(崇義女子中學校) 교사로 근무하다가 1950년에 월남(越南)하였다.

6⋅25 전쟁 때는 제주도(濟州道)에서 장이석과 함께 선전 포스터를 그렸고, 마산(馬山)에서는 나건파와 함께 북진전(北進展)을 열어 유화 12점을 전시하였다.

1959년 제8회 대한 민국 미술 전람회(國展)에서 문교부 장관상을 받은 뒤 1961년 제10회 국전(國展)부터 추천 작가⋅초대 작가⋅심사 위원장으로 참여하였고, 1972년 [만개(滿開)]로 초대 작가상을 받았으며, 중앙 대학교(中央大學校) 교수 등을 지냈다.

1950년대에는 비교적 활발하게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6⋅25 전쟁 이전에는 사실적(寫實的) 그림을 그렸고, [비둘기와 두 여인](1952년)⋅[여인](1952년)에서는 주로 거칠고 빠른 붓처리를 사용하여 대상을 어두운 색조로 구획하는 표현적인 구상 작품을 보여 주었다.

[여인의 일지](1959년, 145.5×112.1cm, 작가 소장)⋅[폐문(閉門)](1961년) 등에서는 대상을 단순화하여 기하학적으로 구성하면서, 실향(失鄕) 작가로서의 인간적 고뇌를 굵고 진한 검은색의 선(線)과 면으로 표현하는 강렬한 추상 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abstract expressionism)로 드러냈다. 이러한 작품은 음각(陰刻)의 판화 작품에서 표현되는 기법과 비슷한데, 이러한 작품을 전후로 한 시기를 ‘흑색 시대(黑色時代)’라고 부른다.

1967년 박창돈(朴昌敦, 1928~, 한국의 서양화가)⋅박항섭(207)⋅장이석 등과 함께 ‘구상전(具象展)’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1960년대 이후의 작품은 ‘황색 시대(黃色時代)’로 변모하여, [심청전(沈淸傳)]⋅[장화 홍련전(薔花紅蓮傳)] 등 우화적(寓話的)⋅설화적(說話的)인 모티프(motif)를 주제로 하여 은유적인 성적(性的) 표현, 몽환적(夢幻的)인 분위기, 전통적인 해학⋅익살, 고대 소설⋅민담⋅에로티시즘(eroticism)을 소재로 한 토속적⋅문학적인 분위기 등을 표현하였다. 주로 캔버스에 흙을 발라 두꺼운 마티에르(matière, 패널⋅캔버스⋅종이, 그 밖에 재질에 따라 변화를 주는 회화 기법) 효과를 이용하여 토속적인 정취를 나타냈다.

1985년 국전 출품작 등 50점을 서울 국립 현대 미술관(國立現代美術館)에 기증하였다.

이 밖에 [동심(童心)](1972년)⋅[봄날](1984년) 등 많은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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