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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호(金觀鎬) -

- 생몰년 : 1890~1959
- 국    가 : 한국


金觀鎬 1890~1959. 10. 20.

한국의 서양화가.

호(號)는 동우(東愚).

평양(平壤)에서 태어났다.

1909년(융희 3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며, 1911년 도쿄 미술 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한국인으로는 고희동(37)에 이어 두 번째로 정규 미술 학교에서 서양화 교육을 받았다.

1915년 졸업 작품 [해질녘(夕暮)](127.5×127.5cm, 일본 도쿄 예술 대학교)으로 최우등상을 받았으며, 도쿄 미술 학교를 수석(首席)으로 졸업하였다.

[해질녘]은 사실적(寫實的)인 형태 묘사에 광선 효과를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던 외광파(外光派, 태양 광선 아래서 자연을 묘사한 화가, 즉 실내 광선이 아닌 야외의 자연 광선에 비추어진 자연의 밝은 색채 효과를 재현하기 위하여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 화파를 통틀어 일컫는 말.)를 소화하여 그린 작품이다. 대동강(大同江)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인물과 전체 배경이 어울리지 않는 듯한 어색한 면도 있으나, 인체 묘사나 노을진 강변의 분위기 묘사가 뛰어났다.

또한 이 작품은 고전주의(古典主義, classicism)적인 형태 묘사에 충실하였으며, 부드러운 필치에 중후한 느낌을 주는 색채 감각이 두드러진다. 이 같은 특징은 당시 콜랭(Raphael Collin, 1850~1916, 프랑스의 화가)에 기원(起源)을 두고 있던 도쿄 미술 학교 서양화과의 구로다 세이키(46)⋅나가하라 고다로(長原孝太郞)⋅오카다 사부로스케(岡田三郞助)⋅와다 에이사쿠(和田英作, 1874~1959, 일본의 서양화가) 등에 의하여 확립된 일본 외광파의 양식을 온전히 익혀 구사(驅使)하였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며, 그 가운데서도 오카다 사부로스케⋅와다 에이사쿠에 접근해 있음을 말하여 준다.

1916년 일본 문부성(文部省) 주최의 제10회 미술 전람회(文展)에 [해질녘]을 출품하여 특선으로 입선하여 언론과 미술계의 기대를 모았다. 이광수(李光洙, 1892~?, 한국의 소설가)가 [문전 관람기(文展觀覽記)]를 통하여 그의 천재를 상찬할 정도였다.

1916년 귀국한 뒤, 평양에서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화 개인전을 열고 [자화상(自畫像)](1916년)⋅[평양 풍경화] 등 50여 점을 출품하였다.

1923년 제2회 조선 미술 전람회(鮮展)에 [호수(湖水)]로 입선하였고, 1925년에는 평양에 소성 미술 연구소(塑星美術硏究所, 소성회)라는 미술 단체 및 연구소를 열어 전통 회화를 담당하였던 김윤보(91)⋅서양화가 김찬영(104) 등과 함께 서양화 보급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고희동과 함께 한국 서양화 개척에 쌍벽(雙璧)을 이루었는데, 고희동은 서울에서, 김관호는 평양에서 각각 활동하였다.

뛰어난 기량으로 당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자 화가로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좌절하였고, 누드화에 대하여 미풍양속(美風良俗)을 해친다는 평가나 일제(日帝)의 강압된 통치 체제에 대하여 그의 예술은 침묵을 시작하게 되었고, 작품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여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1927년께 화단(畫壇)에서 완전히 은퇴하였다.

1935년 즈음에는 같은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하여 준비하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이런저런 상황들로 술과 사냥에 빠지게 되었다. 광복된 뒤에도 은둔자적인 자세로 손자⋅손녀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60세 때인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손자⋅손녀들을 남으로 내려 보내고 평양에 남아 며느리와 함께 매우 어렵게 살았다.

목재상을 하다가 북한 정부의 도움으로 1954년 조선 미술가 동맹(朝鮮美術家同盟)에 들어가 다시 붓을 들어 죽기 전 5년 동안 모란봉(牡丹峰)이나 대동강 등 과거의 평양과 현재의 변모해 가는 평양의 풍경을 정감 있고 특색 있게 그려 내는 데 주력하여 [모란봉]⋅[해방탑의 여름] 등의 유화(油畫)를 남겼다. 대표적인 북한 화가로 알려졌지만 그의 작품은 많이 사라졌다.

화풍(畫風)은 퓌비 드샤반(Pierre-Cécile Puvis de Chavannes, 1824~1898, 프랑스의 화가)풍의 밝고 세련된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 색채가 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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