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ㄱ>기>김경  

인쇄 하기  html이나 txt파일로 저장 합니다.  원하시는 곳에 붙여넣기 하세요.  글자 크기 크게 글자 크기 작게
- 김경(金耕) -

- 생몰년 : 1922~1965
- 국    가 : 한국


金耕 1922~1965. 7. 26.

한국의 화가.

본명(本名)은 만두(萬斗).

경상 남도 하동(河東)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에서 죽었다.

1940년 일본 니혼 미술 학교(日本美術學校) 미술과에 입학하여 어려운 유학 생활을 보냈다.

광복된 뒤에는 경상 남도 진주(晉州)에서 작품 제작에 몰두하였으며, 1950년 피난지 부산(釜山)의 미국 공보원(美國公報院)에서 열린 국민 예술제 미전(美展)에 목판화(木版畫) [어시장(魚市場)에서]를 출품하고, 경남 미술가 협회(慶南美術家協會) 제1회 미전에는 [어군 포착(魚群捕捉)]을 출품하여 주목을 받았다.

6⋅25 전쟁 뒤에는 잡역부(雜役夫)로 일하며 어렵게 생활하였다.

1953년 부산에서 김영교(金聆敎, 1916~, 한국의 서양화가)⋅김윤민(金潤玟, 1919~1999)⋅김종식(金鍾植, 1918~1988, 한국의 서양화가)⋅서성찬(徐成贊, 1906~1959, 한국의 서양화가)⋅임호(490) 등과 미술 동인(美術同人) ‘토벽(土壁)’을 결성하여, ‘소(牛)’ 등을 주제로 하는 토속적인 작품을 제작,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 해 9월에 서양화가 정규(519)의 주선으로 부산 공고(釜山工高) 교사가 되었다.

환도(還都)한 뒤 1956년 박고석(194)⋅유영국(372)⋅이규상(397)⋅정규 등과 ‘모던 아트(modern art)’ 동인이 되면서부터 추상화(抽象畫) 경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현대 정신의 허망성을 고발하고 그 속에서 생명의 강인한 근원을 발굴하려고 힘썼다. 주로 사실적(寫實的) 경향의 강렬한 조형 의식을 바탕으로 한 성실한 화면을 구성하였다.

1956년 부산 광복동(光復洞) 미화당 백화점(美花堂百貨店) 전시실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제 신보(國際新報)]⋅[부산 일보(釜山日報)] 등에 신문 삽화를 그렸다.

1959년 제1회 [조선 일보(朝鮮日報)] 현대 작가 초대전(現代作家招待展)에 출품하였고, 1958년부터는 ‘모던 아트’ 동인전에 [모자상(母子像)]⋅[저립(佇立)]⋅[조우(遭遇)]⋅[침식(浸軾)] 등을 6차례에 걸쳐 출품하였는데, 이 때부터 추상적인 색채가 더해졌다.

1964년 뇌일혈로 쓰러진 뒤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으나, 같은 해 추상화 및 소를 주제로 한 소품 등 30여 점으로 제2회 개인전을 가졌으며, 이듬해에 죽었다.

1966년에 서울 중앙 공보관(中央公報館), 1978년에 부산 수로 화랑(水路畫廊), 1982년 서울 조선 화랑(朝鮮畫廊) 등에서 유작전(遺作展)이 열렸다. 살아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는데, 유작전을 통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작품으로 [소녀(少女)와 닭](1949년, 27×40cm, 개인 소장) 등이 있다.

상위  이전  다음


제작 : 동방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