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 1620~1699
- 국 가 : 한국
南宮鈺 1620(광해군 12)~1699
조선(朝鮮, 1392~1910)의 서화가(書畫家).
자(字)는 여상(汝常), 호(號)는 창주(滄州), 본관(本貫)은 함열(咸悅).
관찰사(觀察使) 남율(南慄, 南嵂)의 아들이다.
1652년(효종 3년)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及第)하고, 벼슬은 시정(寺正)에 이르렀다.
문장과 서화에 뛰어나고, 속필(速筆)은 매우 능하였다.
7차례나 군(郡)⋅현(縣)을 맡아 다스리는 동안 청백리(淸白吏)의 표본으로 이름이 높았다.
작품으로 [대흥사 중건비문(大興寺重建碑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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