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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쿠안 소호(澤庵宗彭) -

- 생몰년 : 1573~1645
- 국    가 : 일본


澤庵宗彭 1573~1645

일본 임제종(臨濟宗)의 승려이며 서예가⋅화가⋅다도가(茶道家).

다지마[但馬, 지금의 혼슈(本州) 서부 주코쿠(中國)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 근처 시나가와(品川)에서 죽었다.

성장 배경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나, 10세 때 출가(出家)하였으며, 32세 때 ‘다쿠안’이란 법호(法號)를 받았다. 당시 봉건(封建) 사회의 상류 계층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1607년 고요제이 천황(後陽成天皇, 1571~1617, 일본의 제107대 천황. 재위 1586~1611)의 명으로 교토(京都)의 선종(禪宗) 사원 다이토쿠사(大德寺)의 주지(住持)가 된 뒤, 난소사(南宗寺)와 소쿄사(宗鏡寺)의 주지를 지냈다.

1620년에 조정(朝廷)이 고승(高僧)에게 내린 자의(紫衣, 천황의 허가가 있어야만 입을 수 있었다.) 착용의 특허를 바쿠후(幕府)가 무효로 한 ‘자의 사건(紫衣事件)’에서 바쿠후의 정책을 비판하였다가 혼슈 북부 야마가타(山刑)로 유배되었다.

유배 기간에 사찰을 재건하였고 저서 2권을 남겼는데, [후도치신묘로쿠(不動智神妙錄)]에서는 종파(宗派) 간에 서로 달랐던 선종의 교리(敎理)가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을 보이려고 하였다. [태아기(太阿記)]는 ‘태아’라는 중국의 전설적인 명검(名劍)의 이름을 딴 것으로, 검도(劍道)에 관한 저작이다.

검도를 선종의 의식(儀式)과 결합시켜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 1603~1867년, 에도 시대)의 많은 무사(武士)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638년 에도로 돌아온 뒤, 새로 쇼군[將軍, 일본의 역대 무신 정권(武臣政權)인 바쿠후(幕府)의 수장(首長)을 가리키는 칭호]이 된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 1604~1651, 도쿠가와 바쿠후의 3대 쇼군. 재위 1623~1651)의 호의로 에도 시나가와 근처에 있는 도카이사(東海寺)를 창건하는 데 바쿠후의 원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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