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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오카 뎃사이(富岡鐵齊) -

- 생몰년 : 1837~1924
- 국    가 : 일본


富岡鐵齊 1837. 1. 25.~1924. 12. 31.

일본의 문인화가(文人畫家).

본명(本名)은 도미오카 도세쓰(富岡道節). 도미오카 유스케(富岡猷輔), 도미오카 햐쿠렌(富岡百鍊)이라고도 한다.

부유한 승복(僧服) 상인(商人)의 둘째 아들로, 교토(京都)에서 태어났으며, 이 곳에서 죽었다.

어려서부터 일본 고전⋅유학(儒學)⋅양명학(陽明學)⋅불교⋅시론(詩論) 등을 공부하였다. 한때 여승이며 시인인 오타가키 렌게쓰니(太田垣蓮月尼)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았는데, 그녀는 그의 인생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오스미 난코(大角南耕)와 우키타 잇케이(宇喜田一蕙)를 통하여 그림의 기초 학습을 닦았으나, 19세 때부터 거의 독학(獨學)으로 화법(畫法)을 배웠으며, 여러 곳을 여행하여 사생(寫生)을 기초로 하고 여러 화파(畫派)를 연구하여 독자의 화풍(畫風)을 창출하였다.

1860년대 초부터 이른바 근황 사상(勤皇思想)에 기울어 한때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 1603~1867년, 에도 시대) 말기의 동란(動亂) 속에서 나라를 위하여 일하였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53년에서 1877년을 전후하여,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1852~1912, 일본의 제122대 천황. 무쓰히토(睦仁). 재위 1867~1912) 때 막번(幕藩) 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정 복고를 이룩한 변혁 과정] 뒤에는 신사(神社)의 부흥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였으나, 1882년(메이지 14년) 교토로 돌아가 그림에 전념하여 점차 명성을 얻었다.

유교(儒敎) 사상을 세계관 깊숙이 받아들였으며, 메이지유신 이후 급격한 서구화 물결 속에서 다른 화가들과 달리 혼란을 겪지 않았다.

약 2만여 점에 달하는 작품은 대부분 일본⋅중국의 고전 문학과 설화(說話) 등에서 소재를 얻은 것이며, 구성의 스케일이 크고 필법(筆法)이 대담하다. 선려한 색채 감각과 강렬한 생동감, 자유 분방한 정신이 잘 반영되어 있는 작품들은 수묵화(水墨畫)이든 채색화이든 서양화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또 그림을 통한 설법에 착안하여 화찬(畫讚)에 골몰하였으며, 고금동서(古今東西)의 서적에서 인용한 독특한 서체(書體)를 구사(驅使)하였다.

각종 전람회와 박람회의 심사 위원이 되었으나, 몇몇 전시회 외에는 출품을 피하는 등 자적(自適)의 생활 속에 재야 학자로서의 태도로 일관하였다.

1917년 왕실 기예원(王室技藝院), 1919년 제국 미술원(帝國美術院) 회원이 되었으며, 혼슈(本州) 효고현(兵庫縣) 남동부 다카라즈카(寶塚)에 그의 이름을 딴 뎃사이 미술관(鐵齊美術館)이 있다.

작품으로 [군세코카이즈(群仙高會圖)](1908년)⋅[아베노나카마로 메이슈보게쓰지(阿部仲磨呂明州望月圖)](1908년)⋅[후지산 정상(富士山頂上)] 등이 있으며,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작품들이 미국⋅영국⋅프랑스 등지에서 순회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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