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ㅂ>바>박항섭  

인쇄 하기  html이나 txt파일로 저장 합니다.  원하시는 곳에 붙여넣기 하세요.  글자 크기 크게 글자 크기 작게
- 박항섭(朴恒燮) -

- 생몰년 : 1923~1979
- 국    가 : 한국


朴恒燮 1923~1979. 3. 26.

한국의 서양화가.

전형적인 그리스도교 집안의 맏아들로, 황해도 장연(長淵)에서 태어났다.

해주 고등 보통 학교(海州高等普通學校) 3학년 때 조선 일보사(朝鮮日報社)에서 주최하는 중등 미술전에 수채화를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1941년 해주 고등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 가와바다 미술 학교(川端美術學校)에 입학하였다. 잦은 병고(病苦)로 귀국하였으나 1943년 졸업하였고, 1945년 일본군에 징집(徵集)당하였다.

광복된 뒤에 장연 예술가 협회(長淵藝術家協會)를 결성하였고, 1948년 해주 미술 학교(海州美術學校) 교사를 지내다가 6⋅25 전쟁이 터지자 월남(越南)하였다.

1950년대에는 주로 서울의 고등 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지냈으며, 1953년 제2회 대한 민국 미술 전람회(國展)에서 유화(油畫) [채과도(菜果圖)]를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1956~1961년 창작 미협전(創作美協展)에 참가하였고, 1961년 제10회 국전(國展)에서 추천 작가가 되었다.

1962년부터 서라벌 예술 대학교(지금의 중앙 대학교 예술 대학) 강사가 되었다.

1967년 박창돈(朴昌敦, 1928~, 한국의 서양화가)⋅장이석(502)⋅최영림(578) 등과 함께 ‘구상전(具象展)’의 창립 회원이 되어 미술 활동에 전념하였다.

1971년 제20회 국전에서 추천 작가상을 받은 뒤 7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전⋅한국 미술 대상전⋅동아 국제 미술전 등의 심사 위원을 지냈다.

작품은 구사(驅使)의 테두리 속에서 사실(寫實)보다는 환상적(幻想的)인 영상을 표현하였다. 사실적인 묘사에서 시작하여 지극히 주관적인 구상(具象)의 세계에 도달하여, 현대 서양화에서 환상적 화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실향민으로서의 자의식(自意識)이 농축된 그의 회화는 [동화(童話)]⋅[신화 시대(神話時代)](1963년)⋅[전설(傳說)] 등 주로 설화적(說話的) 소재를 취하였고, 말년의 [어족(魚族)] 연작(聯作)은 소재의 특이성과 함께 조형적 자유로움이 나타나 있다.

개인전을 준비하던 중 과로로 말미암은 뇌혈전증으로 죽었으며, 1981년 현대 화랑(現代畫廊)에서, 1989년 경기도 용인(龍仁) 호암 미술관(湖巖美術館)에서 유작전(遺作展)이 열렸다.

이 밖에 작품으로 [수중 지대 B](1971년)⋅[행자](1972년)⋅[돌담 이야기](1975년)⋅[미술사(美術史)의 여행](1977년) 등이 있다.

상위  이전  다음


제작 : 동방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