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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렴(裵濂) -

- 생몰년 : 1911~1968
- 국    가 : 한국


裵濂 1911~1968

한국의 동양화가.

호(號)는 제당(霽堂), 본관(本貫)은 성산(星山).

경상 북도 금릉(金陵)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할아버지로부터 한학(漢學)을 배웠고, 금릉 청년 학관(金陵靑年學館) 중등과에 다녔다.

서울로 가서 서학(西學)을 공부하였으며, 1929년 18세 때 이상범(421) 문하(門下)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전통 화법(畫法)을 배웠다.

같은 해에, 우리 나라 최초로 창립된 순수 근대 미술 동인회(同人會)인 서화 협회(書畫協會) 제9회 전람회(協展)에 [만추(晩秋)]를 출품하였고, 1936년 서화 협회의 마지막 전람회까지 해마다 출품하였다.

1930년 제9회 조선 미술 전람회(鮮展)에 첫 입선한 뒤, 선전(鮮展)이 끝난 1944년(제23회)까지 계속 출품하였는데, 1936년(제15회)과 1943년(제22회)에는 [요원(遼遠)]과 [산전(山田)]이 특선에 올랐다. 이 시기의 전람회 출품작들은 스승 이상범의 화풍(畫風)을 본받은 수묵 담채(水墨淡彩)로 주로 향토적 풍경을 그렸다.

1935년 서화 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1940년 서울 화신 화랑(和信畫廊)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42~1943년까지 청전 화숙(靑田畵塾) 동문전에 참가하였다.

광복된 뒤에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가 결성되자 그 산하에서 조선 문화 건설 중앙 협의회(朝鮮文化建設中央協議會) 미술 위원, 조선 미술 건설 본부(朝鮮美術建設本部) 동양화부 회원, 조선 미술 협회(朝鮮美術協會) 상임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6년에는 김영기(82)⋅김중현(103)⋅이유태(447)⋅이응로(449)⋅장우성(499)⋅조중현(550) 등과 함께 단구 미술원(檀丘美術院)을 조직하여 일본 잔재의 청산과 전통적 한국화(韓國畫)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으며, 그 해 3월 첫 회원전을 개최하였다.

1947년 미군정청 문교부가 개최한 전국 종합 미술전의 심사 위원을 지냈고, 1949년에 시작된 대한 민국 미술 전람회(國展)에 처음부터 추천 작가⋅초대 작가가 되었으며, 1953~1967년에는 동양화부 심사 위원을 맡았다.

1945~1956년 서울 대학교에 출강하였고, 1954년 예술원(藝術院) 회원이 되었다. 1965년 홍익 대학교(弘益大學校)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조선 서화 동연회(朝鮮書畫同硏會)⋅대한 미술 협회[大韓美術協會, 미협(美協)] 등에서 활동하였다.

1963년 문화 훈장 국민장, 1964년 예술원상, 1967년 서울 특별시 문화상을 받았다.

화풍은 변화가 풍부하지 않은 평범한 시각과 담담한 구도, 수묵의 변화에 기조(基調)를 둔 사경미(寫景美)를 보여 주며, 강한 표현의 특징은 이상범의 영향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준법[皴法, 동양화에서 산애(山崖)나 암석의 굴곡 등의 주름을 그리는 화법. 산이나 흙더미 등의 입체감⋅양감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동양적 음영법(陰影法)]보다는 수묵의 농담(濃淡)에 의하여 대상을 파악해 들어가는 기법은 화면에 독특한 양감(量感)을 부여한다.

남화(南畫) 산수가 갖는 문기(文氣) 짙은 분위기를 수묵으로 연출하면서 관념적인 구도를 벗어나 단아한 화격(畫格)을 중시하는 새로운 한국 산수를 모색하였다.

작품으로 [계산유거(溪山幽居)]⋅[녹수청산(綠樹靑山)](1943년)⋅[부귀장춘(富貴長春)](1943년)⋅[산(山)]⋅[산수도(山水圖)](1965년, 50×65cm)⋅[설악 영봉(雪嶽靈峰)]⋅[심산춘래(深山春來)]⋅[추계(雛鷄)](1957년)⋅[추심상로(秋深霜老)]⋅[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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