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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징(吳大澂) -

- 생몰년 : 1835~1902
- 국    가 : 중국


吳大澂 1835~1902

중국 청(淸)나라(1616~1912)의 정치가이며 학자⋅서예가⋅화가.

자(字)는 청경(淸卿), 호(號)는 항헌(恒軒)⋅각재(각客心齋).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 우셴(吳縣)에서 태어났다.

1868년 진사시(進士試)에 급제(及第)하였다.

1884년 12월 4일 조선(朝鮮, 1392~1910)에서는 김옥균(金玉均, 1851~1894, 조선의 정치가. 갑신정변의 주동자)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開化派)가 일본의 무력(武力) 지원 아래 급진적 근대화 개혁을 단행하기 위한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켰다.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민씨(閔氏) 정권은 청나라에 원조를 요청하였고, 청나라는 리훙장(李鴻章, 1823~1901, 중국 청나라의 정치가) 등을 파견하였다. 오대징은 리훙장 휘하의 회판북양사의(會瓣北洋事宜)로서 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마산포(馬山浦)에 들어왔으며, 당시 조선과 일본 정부 사이에 진행 중이던 한성 조약(漢城條約, 1885년 1월 9일) 회담 장소에 뛰어들어 소란을 일으켰다.

일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 일본의 정치가)와 리훙장의 톈진 조약(天津條約) 체결(1885년 4월 18일)에 참여하였으며, 리훙장에게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전선(電線)을 가설할 것을 건의하여 인천(仁川)⋅의주(義州) 간 전선 가설을 위한 조⋅청 전선 조약(朝淸電線條約)을 체결(1885년 7월 17일)하도록 하였다.

중국 북동부 지린(吉林)의 경계선 의정(議定)에 활동하여 후난성(湖南省) 순무(巡撫)가 되었다.

1894년 청⋅일 전쟁(淸日戰爭, 1894~1895)이 일어나자 1군의 장(長)이 되었으나 산하이관(山海關)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크게 패하여 실각(失脚)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나서는 용문 서원(用門書院)의 주강(主講)이 되었고, 문학에 능하였으며, 몇십 년에 걸쳐 대전(大篆)을 배워 육서(六書)의 연구에 힘썼다.

고대의 금석문(金石文)을 바탕으로 하여 전서(篆書) 작가로 군림하였다. 금석학에 관한 저술이 많은데, [고옥도고(古玉圖考)]⋅[설문고주보(說文古籒補)]⋅[항헌길금록(恒軒吉金錄)] 등은 획기적인 업적으로 칭송된다.

그가 쓴 [전문논어(篆文論語)]⋅[효경(孝經)]은 널리 알려졌으며, 그 밖에 [권형도량실험고(權衡度量實驗攷)]⋅[자설(字說)]⋅[주진양한명인인고(周秦兩漢名人印攷)] 등이 있다.

화초와 산수(山水)에도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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