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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력(吳歷) -

- 생몰년 : 1632~1718
- 국    가 : 중국


吳歷 1632~1718

중국 청(淸)나라(1616~1912)의 문인화가(文人畫家).

자(字)는 어산(漁山), 호(號)는 묵정도인(墨井道人).

장쑤성(江蘇省) 창서우(常熟)에서 태어났다.

명(明)나라(1368~1644) 말 청나라 초의 4왕[왕감(336)⋅왕시민(348)⋅왕원기(350)⋅왕휘(354)]⋅운격(361)과 함께 오파(吳派, 중국 명나라의 회화 유파. 북종화계의 절파에 대하여, 남종화계 화가를 말한다.)의 정통을 이은 ‘사왕오운(四王吳惲)’의 한 사람으로 ‘청초 6대가(淸初六大家)’로 불리었다.

왕휘와 친하였으며, 그와 함께 왕시민 문하(門下)에서 그림을 배웠다. 나중에는 예찬(315)⋅오진(327)⋅왕몽(341)⋅황공망(620) 등 이른바 ‘원말 4대가(元末四大家)’ 등에게 배워, 그들의 필법(筆法)을 체득하였다.

어머니와 아내가 죽고 두 딸이 출가(出嫁)하여 가족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자, 1681년 포르투갈령(領) 식민지(植民地) 광둥성(廣東省) 마카오(Macao, 澳門)에 가서 가톨릭(Roman Catholic)에 귀의(歸依)하여 천주교 신자(信者)가 되었고, 그 곳에서 서양화의 기법을 익혀 지적(知的)인 구성을 깊게 하였다.

1688년 ‘아쿤하’라는 이름으로 사제(司祭)에 임명되었고, 장쑤성의 선교사로 배치되었다.

서양 판화(版畫)와 그림을 접하였으나, 자신의 그림은 중국 전통 양식에 충실하였으며, 언제나 그의 중국 이름으로 서명(署名)하였다.

본성이 겉치레가 없고 권세가와 교유(交遊)하지 않는 사람으로, 품격이 높은 산수화(山水畫)를 남겼다. 화풍(畫風)은 기운후중(氣韻厚重)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의 화계(畫系)를 ‘우산파(虞山派)’라고 부르는데, 형식화한 오파의 남종화(南宗畫)에 대하여 청신한 화풍을 전개하였다. 청나라 중기 이후에, 관학화(官學畫)된 오파의 남화에 반대하는 화가들의 대다수가 그의 계통에서 나왔다.

은둔에 가까운 소극적인 삶을 살았으며, 문인(文人)들이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화가의 이상(理想), 즉 교양을 쌓은 비직업적인 화가의 이상에 걸맞은 태도로 고유한 유교적 덕목을 길렀다.

[산수도권(山水圖卷)] 등의 작품이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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