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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위업(吳偉業) -

- 생몰년 : 1609~1671
- 국    가 : 중국


吳偉業 1609~1671

중국 명(明)나라(1368~1644) 말 청(淸)나라(1616~1912) 초의 시인이며 화가.

자(字)는 준공(駿公), 호(號)는 매촌(梅村).

장쑤성(江蘇省) 타이창(太倉)에서 태어났다.

1631년 22세의 젊은 나이로 진사시(進士試)에 급제(及第), 재야(在野) 주자학(朱子學) 계통의 학술과 정치 결사(結社)인 복사(復社)에 가입하였고, 정의파로서 정계(政界)에서 활동하였다.

벼슬은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동궁 시독(東宮侍讀)⋅난징(南京) 국자감(國子監) 사업(司業)에 이르렀다.

명나라가 멸망한 뒤에 다시 복왕(福王) 주유송[朱由崧, 중국 명나라(남명)의 제18대 황제. 인종(仁宗). 재위 1644~1648]을 섬겼으나, 곧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 양강(兩江) 총독(總督) 마국주(馬國柱, 재직 1647~1654)의 천거를 거절하지 못하고 청나라 조정(朝廷)의 요청으로 부득이 벼슬길에 나아가 국자감 좨주(祭酒, 학사 담당)가 되었으나 2년도 채우지 못하고 모친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 그 일을 후회하다가 죽었다. 그 일로 [술회시(述懷詩)]를 썼다.

그의 시는 당(唐)나라(618~907) 초기의 화려한 작풍(作風)의 영향을 받아 재기가 넘치며, 장편의 7언시(七言詩)로 망국(亡國)의 비극을 노래한 많은 작품을 남겨, 명청 교체(明淸交替)라는 폭풍 시대의 증인이 되었다.

서화(書畫)에도 뛰어났으며, 공정자(龔鼎孶, 1615∼1673, 중국 청나라의 시인)⋅전겸익(錢謙益, 1582~1664, 중국 명나라 말 청나라 초의 학자이며 시인)과 함께 ‘강좌(江左)의 3대 시인’이라고 불렀다.

[말능춘(秣陵春)]⋅[매촌가장고(梅村家藏稿)](모두 60권)⋅[매촌집(梅村集)](모두 40권)⋅[임춘각(臨春閣)]⋅[통천대(通天臺)] 외에 [수기기략(綏寇紀略)] 등 명나라 말기의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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