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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윤(李慶胤) -

- 생몰년 : 1545~1611
- 국    가 : 한국


李慶胤 1545(인종 1)~1611(광해군 3)

조선(朝鮮, 1392~1910)의 문인화가(文人畫家).

자(字)는 수길(秀吉), 호(號)는 낙파(駱坡)⋅낙촌(駱村)⋅학록(鶴麓),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 성종(成宗, 1457~1494, 조선의 제9대 왕. 재위 1469~1494)의 아들]의 종증손(從曾孫)으로, 이영윤(440)의 형이며, 이징(469)의 아버지이다.

처음에 학림수(鶴林守)를 제수(除授)받았다가 나중에 학림정(鶴林正)에 진봉(進封)되었다.

산수화(山水畫)에 뛰어났으며, 인물⋅영모(翎毛, 새와 짐승 등을 소재로 그린 그림)⋅우마(牛馬)를 즐겨 그렸고, 색감과 정취가 뚜렷하였다.

아우 이영윤은 영모와 화조(花鳥)에 능하였으며, 양자(養子) 이징 역시 일가(一家)를 이루어 종실(宗室) 출신이면서도 화업(畫業)이 가전(家傳)되었다.

김시(77)와 함께 조선 중기의 화단에서 절파(浙派, 중국 명나라 말기 때 발생한 회화의 한 파) 화풍(畫風)의 정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것으로 전칭(傳稱)되는 작품은 여러 점 있으나, 대부분 관지(款識)와 도인(圖印)이 없다. 또한 솜씨가 다른 것이 많고 한결같이 제작 연도(年度)의 기록이 없어 연대적(年代的)인 양식 변천은 추적해 볼 수가 없다.

노수신(盧守愼, 1515~1590, 조선의 문신이며 학자)의 [제학림수유금강축(題鶴林守遊金剛軸)]에는 ‘김시가 산을 그리고 아계(鵝溪)가 제시(題詩)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남태응(南泰膺, 1687~1740, 조선의 문인이며 미술 평론가)은 [청죽화사(廳竹畫史)]에서 ‘김시와 비교하여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이 없다.’라고 평하였다.

또한 전칭되는 작품에서 주로 절파 화풍이 보이므로 30년 연상인 김시와의 교유(交遊)를 통하여 그의 화풍을 접하였으리라고 짐작되며, 나아가서 그의 절파 화풍을 이어 일가를 이루었을 가능성까지 생각할 수 있다.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것은 대부분 인물을 중심으로 한 소경 산수 인물화(小景山水人物畫)인데,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59.5×91.1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는 대경 산수 인물화라고 할 수 있다. 산이나 바위에서 흑백의 대비가 현저하며 비스듬히 솟은 산에서 절파의 영향이 보이는 [산수도]는 앞시대 김시의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와 뒷시대 김명국(72)의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를 연결해 주는 작품이다.

진작(眞作)으로 신빙성이 가장 높은 것은 최립(崔岦, 1539~1612, 조선의 문인이며 문신)의 발문(跋文)과 찬시(贊詩)가 있는 [산수인물화첩(山水人物畫帖)](22.5×23cm, 서울 호림 미술관)이며, 이 밖에 [고사관월도(高士觀月圖)]⋅[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19.4×27.9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관폭도(觀瀑圖)]⋅[사호위기도(四皓圍碁圖)]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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