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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기(李命基) -

- 생몰년 : ?~?
- 국    가 : 한국


李命基 ?~?

조선(朝鮮, 1392~1910)의 화가.

호(號)는 화산관(華山館), 본관(本貫)은 개성(開城).

아버지는 종6품 아문(衙門)인 도화서(圖畫署) 화원(畫員)으로 사과(司果)를 지낸 이종수(李宗秀)이며, 찰방(察訪)과 상의원(尙衣院) 별제(別提)를 지낸 김응환(94)의 사위이다.

이명기도 역시 도화서 화원으로 찰방을 지냈다.

초상화를 잘 그려 1791년 정조(定祖, 1752~1800, 조선의 제22대 왕. 재위 1777~1800) 어진(御眞) 원유관본(遠遊冠本) 도사(圖寫)의 주관화사(主管畫師)로 일하였다.

1794년에는 정조의 명으로 허목(許穆, 1595~1682, 조선의 학자이며 문신)의 초상을 이모(移模)하였으며, 1796년에는 김홍도(110)와 함께 [서직수 초상(徐直修肖像)](73×148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을 그렸다. 이 초상화는 얼굴은 이명기가, 몸체는 김홍도가 그린 것이다. 이와 같이 합작(合作)이 가능하였던 것은 초상화에서 얼굴을 그리는 기법과 옷을 그리는 기법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명기는 이 밖에도 [오재순 초상(吳載純肖像)](1791년쯤, 89.6×152cm, 경기도 용인 호암 미술관)⋅[허목 초상(許穆肖像)](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을 김홍도와 합작으로 그렸다.

[장범선유도((張帆船游圖))](이화 여자 대학교 박물관)는 석양의 뱃놀이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많이 보이나, 명암을 살려 양감(量感)을 표현한 기법은 서양화법을 단편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산수화(山水畫)는 초상화에 비하여 격이 떨어지는 편이고, 인물과 바위의 모습⋅필법(筆法) 등에서 김홍도의 화풍(畫風)의 영향을 많이 받아 독자적인 개성이 뚜렷하지는 못하다. 그 밖에 채접(彩蝶)을 잘 그렸다.

작품으로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린 기로도상(耆老圖像) [강세황 영정(姜世晃影幀)](1783년쯤, 94×145.5cm, 보물 제590호,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을 비롯하여 [관폭도(觀瀑圖)]⋅[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송하독서도(松下讀書圖)](경기도 용인 호암 미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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