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 1901~?
- 국 가
: 한국
李如星 1901~?
한국의 화가이며 정치가⋅언론인.
호(號)는 사천선(沙泉先)⋅청정(靑汀).
만석꾼인 아버지 이경옥(李敬玉)과 어머니 윤정렬(尹貞烈)의 2남 4녀 가운데 맏아들로, 경상 북도 칠곡(漆谷)에서 태어났다. 월북(越北) 화가 이쾌대
(471)가 아우이다.
9세 때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왔으며, 보성 고등 보통 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고, 대구(大邱)로 가서 사회 운동 단체인 혜성단(彗星團)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18년 중국 장쑤성(江蘇省) 난징(南京)에 있는 진링 대학교(金陵大學校)를 다니다가 3⋅1 운동 직후 귀국하여 독립군에 자금을 대려고 아버지 몰래 땅 문서를 팔다가 체포되어 대구 교도소에서 3년 동안 복역(服役)하였다.
출감한 뒤 일본으로 가서 릿쿄 대학교(立敎大學校) 경제학과에 입학하였으며, 1923년 1월 도쿄에서 한국 유학생을 중심으로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 운동 단체 북성회(北星會)를 조직하고 국내에 사회주의 사상을 알리는 데 힘썼다.
1930년 장쑤성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가 곧 귀국하여 [동아 일보(東亞日報)] 조사부장을 지냈다. 동무들과 출판사 세광사(世光社)를 차려 자신이 쓴 책 외에도 조선(朝鮮, 1392~1910)의 각종 통계가 총망라된 [숫자 조선 연구](모두 5책. 1931~1935년, 김세용 공저)와 [애란 민족 운동(愛蘭民族運動)]⋅[약소 민족 운동의 전망] 등을 펴냈다.
1935년 이상범
(421)과 2인전을 열어 당시 국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40년 [동아 일보]가 폐간당한 뒤로는 복식(服飾) 분야에 몰입하여 [조선 복식고(朝鮮服飾攷)]를 펴냈다. 이 책은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 나라의 복식 분야를 개척한 점에 의의가 있으며, 복식사와 미술사(美術史)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광복 직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가 발족되자 문화부장 및 선전부장이 되었고, 이어 조선 인민 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 중앙 인민 위원으로 뽑혔다.
1948년쯤에 월북한 이후 [조선 미술사 개요](1955년)⋅[조선 건축 미술의 연구](1956년)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