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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문(李寅文) -

- 생몰년 : 1745~1821
- 국    가 : 한국


李寅文 1745(영조 21)~1821(순조 21)

조선(朝鮮, 1392~1910)의 화가.

자(字)는 문욱(文郁), 호(號)는 유춘(有春)⋅고송류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송수관도인(松水館道人)⋅유춘(有春)⋅자연옹(紫煙翁), 본관(本貫)은 해주(海州).

사자관(寫字官) 등에 종사하던 중인(中人) 기술직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이신대(李愼大)이다.

종6품 아문(衙門)인 도화서(圖畫署) 화원(畫員)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주부(主簿)와 충청도 연풍(延豊) 현감(縣監)을 지냈다.

남루한 옷에 깡마른 모습, 형형한 눈동자를 하였고, 기이하고 특이한 성품을 지녔다.

1795년(정조 19년) [수원능행도병(水原陵幸圖屛)]과 1802년(순조 2년) [순조순원후 가례의궤도(純祖純元后嘉禮儀軌圖)]의 제작에 참여하였다.

동갑생이었던 김홍도(110)와 쌍벽(雙璧)을 이루었으며, 강세황(20)⋅남공철(南公轍, 1760~1840, 조선의 문신이며 문장가)⋅박제가(朴齊家, 1750~1805, 조선의 실학자)⋅신위(276) 등의 문인화가(文人畫家)들과 강희언(25)⋅김득신(71)⋅김영면[金永冕, 조선의 위항시사(委巷詩社)인 ‘서원시사(西園詩社, 칠송정시사(七松亭詩社)라고도 한다.)’의 동인(同人)]⋅이유신(446)⋅임희지(492) 등의 중인 및 화원 화가들과 교유(交遊)하였다.

화풍(畫風)은 종래의 산만한 조선화(朝鮮畫)의 배치 구성을 타파하고 구도가 정연하며 추법(皺法)이 아담하여 높이 평가된다.

인물⋅영모(翎毛, 새와 짐승 등을 소재로 그린 그림)⋅포도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재능을 발휘하여 남공철은 중국 명(明)나라(1368~1644) 원파(院派)의 대가(大家) 당인(141)의 기량에 비견(比肩)된다고 평가하였으며, 신위는 그를 김홍도와 쌍벽을 이룬 명수로 손꼽았다. 그 중 뛰어난 분야는 산수화(山水畫)였으며, 특히 송림(松林)을 즐겨 그려 이 방면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명암이 엇갈리고 몸이 뒤틀린 모습의 소나무와 단아한 필치의 수목과 각진 바위를 특징 있게 묘사하였으며 남종화(南宗畫)와 북종화(北宗畫)에 각 체의 화법(畫法)을 혼합하여 특유의 산수화풍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종합적 성격의 화풍은 김홍도⋅심사정(281)⋅최북(575) 등의 작품 세계와 상통되는 것으로 당시 산수화풍의 주도적 흐름을 대변(代辯)하였다.

작품은 비교적 섬세한 필치로 단단하고 각이 진 모습의 선묘적 경향과 깔끔하고 청정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며, 만년(晩年)에는 강하고 대담한 발묵(潑墨) 위주의 표현적인 붓질로 격식을 초월한 그림을 즐겨 그렸다.

작품으로 비단 바탕에 수묵 담채(水墨淡彩)로 그린 [강산무진도병(江山無盡圖屛)](856×44.1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를 비롯하여 [강촌우색도(江村雨色圖)]⋅[누각아집도(樓閣雅集圖)]⋅[단발령망금강도(斷髮嶺望金剛圖)](개인 소장)⋅[대부벽준산수도(大斧劈皴山水圖)](1816년, 54×98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설경산수(雪景山水)](개인 소장)⋅[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송석원 시회도(松石園詩會圖)]⋅[추림도(秋林圖)]⋅[포도도(葡萄圖)]⋅[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56.3×121.2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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