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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징(李澄) -

- 생몰년 : 1581~?
- 국    가 : 한국


李澄 1581(선조 14)~?

조선(朝鮮, 1392~1910)의 화가.

자(字)는 자함(子涵), 호(號)는 허주(虛舟),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왕족 화가 이경윤(391)의 서자(庶子)이다.

인조(仁祖, 1595~1649, 조선의 제16대 왕. 재위 1623~1649) 때 종6품 아문(衙門)인 도화서(圖畫署) 화원(畫員)으로, 문신(文臣)직 6품인 주부(主簿)와 사과(司果)를 지냈다.

1609년(광해군 1년) 원접사(遠接使)의 수행 화원으로 평안도 의주(義州)에 다녀왔으며, 1623년(인조 1년)에는 여항 문인(閭巷文人) 유희경(劉希慶, 1545~1636, 조선의 학자이며 시인)의 요청에 따라 [임장도(林莊圖)]를 그려 주었다.

1615년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년, 선조 25~31년) 이후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펴낸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삽화의 밑그림 제작에 참여하였다.

1627년에는 김명국(72)⋅유성업(369)과 함께 [소현 세자 가례 반차도(昭顯世子嘉禮班次圖)]를 제작하였다.

1628년에는 태조[太祖, 1335~1408, 조선의 초대 왕. 이성계(李成桂). 재위 1392~1398] 어진(御眞) 개수(改修)에 참여하였다.

1643년에는 경상도 화개현(花開縣)에 있는 정여창(鄭汝昌, 1450~1504, 조선의 문신이며 학자)의 옛 별장을 그린 [화개현 구장도(花開縣舊莊圖)](보물 1046호, 56×89.3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를 완성하였다.

1644년(인조 22년) 세자이사(世子貳師)가 되어 볼모로 잡혀 갔던 소현 세자(昭顯世子, 1612~1645, 인조의 맏아들)가 1645년에 돌아올 때 함께 따라왔다가 3년 동안 머물고 돌아간 중국 명(明)나라(1368~1644) 맹영광(孟永光)과 가깝게 지냈으며, 그에게 중국풍을 배워 착색화(着色畫)를 많이 그렸다.

가업(家業)을 이어받고, 산수(山水)⋅인물⋅영모(翎毛, 새와 짐승 등을 소재로 그린 그림)⋅묵죽(墨竹)⋅화조(花鳥) 등 모든 분야에 두루 뛰어나 일세의 명장(名匠)으로 이름을 크게 날렸다.

허균(許筠, 1569~1618, 조선의 문신이며 문학가)은 그를 가리켜 이정(458) 이후 ‘본국제일수(本國第一手)’라고 하였으며, 인조는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궐내 가까운 곳에 있게 하여 화초와 산수를 즐겼는가 하면, 당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구하려고 애썼고 작은 조각이라도 얻으면 보배처럼 간직하였다.

그의 화명(畫名)은 18세기 말엽까지 지속되어 원체(院體)풍 모범 작가 또는 17세기 최고의 명가(名家)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조선의 문신이며 북학(北學)의 대표적인 학자]은 이징이 어렸을 때 누각에 올라 그림 습작에 몰두하여 사흘 동안이나 집에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렸을 정도로 전문적인 기예를 이루기 위하여 보여 준 집착과 편벽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남태응(南泰膺, 1687~1740, 조선의 문인이며 미술 평론가)은 ‘각체(各體)를 모두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대가(大家)였으나 옛 법을 넓게 구사(驅使)하되 웅혼한 맛이 없고 정밀하나 오묘하지 못하며 기교에 능하되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평하였다.

남아 있는 작품은 전칭작(傳稱作)을 포함하여 18세기 이전의 작가로는 가장 많이 전하고 있는데, 산수화와 영모화⋅화조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산수화에서는 조선 초기의 안견파(安堅派)와 중기의 절파(浙派, 중국 명나라 말기 때 발생한 회화의 한 파)계를 융합한 화풍(畫風)을 즐겨 구사하였으며, 궁중 취향이 짙은 이금산수화(泥金山水畫)도 잘 그렸다. 영모화⋅화조화에서는 절파풍이 덧붙여진 묵법을 바탕으로 서정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소⋅말⋅기러기⋅원앙새 등을 많이 그렸다.

작품으로 [노안도(蘆雁圖)](77.2×144cm, 개인 소장)⋅[연사모종도(煙寺暮鐘圖)](55.1×103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운봉강각도(雲峰江閣圖)]⋅[유정방방도(遊艇訪芳圖)]⋅[선면이금산수도(扇面泥金山水圖)](61.2×87.8cm,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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